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면서 스스로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법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양심과 사회적 관습에 비추어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기준이자, 그 사회를 지속시키는 근간이 됩니다.
사회 상부구조에 위치한 정치의 영역에서는 더더욱 도와 덕이 강조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권에서는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정치 집단이 가장 비도덕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새누리당의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에 이어 어제 터진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는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통합진보당의 진상조사 결과 발표 내용부터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조준호 / 통합진보당 진상조사위원장
- "진상조사위원회는 비례대표후보 선거가 선거관리능력 부실에 의한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고 규정한다. 이로 인해 당원들의 민의가 왜곡되고 국민에게 많은 의혹과 질타를 받게 된 데 대하여 당의 성원으로서 송구함과 더불어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한다."
진상조사위 발표 내용을 보면 비례대표 순위를 정하는 200여 개 현장 투표소 가운데 상당수 투표소에서 띠지를 떼지도 않은 투표용지나 동일인 필체의 서명이 이어진 선거인 명부가 발견됐습니다.
당원이 아닌 사람이 투표에 참여한 '유령투표'가 있었다는 뜻일까요?
또 온라인 투표에서는 같은 IP에서 여러 사람이 투표한 흔적도 드러났습니다.
한 컴퓨터에서 여러 명의 투표가 이뤄졌다는 얘기입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 행위가 부정되는 심각한 상황인 셈입니다.
다른 정당도 마찬가지이지만, 진보당에는 도덕성이 무엇보다 큰 자산이자 무기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통합 진보당이 선전하며 13석을 얻은 이유도 국민이 이 도덕성을 높기 샀기 때문입니다.
진보당은 국민을 기만한 것일까요?
이번 선거부정은 이른바 민족민주 계열로 대변되는 당권파의 폐쇄적인 당 운영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주류를 차지하는 당권파에게 소수파의 의견이 들릴 리 없었고, 당권을 잡기 위해서는 비민주적인 방식이라도 괜찮다는 인식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면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박과 비박, 친노와 비노로 갈라져 계파 다툼을 벌이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을 힐난할 자격조차 없지 않을까요?
통합진보당이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재창당 수준의 뼈를 깎는 쇄신이 필요한 듯 보입니다.
도덕성의 늪에 빠진 것은 청와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9월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기에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부정한 돈을 받아 2007년 대선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고 실언 아닌 실언을 하면서 그 완벽하다던 도덕성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다 이명박 정부의 실세인 박영준 전 차관까지 불법 자금 수수 혐의로 어제 검찰에 출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검찰 조사를 받고 귀가한 박 전 차관의 말 직접 들어보시죠
▶ 인터뷰 : 박영준 / 전 지식경제부 차관
- "강도 높게 조사받았습니다. 그리고 충분히 소명 드렸고 성실히 답변했습니다. (돈 받은 부분은 사실입니까? 시인하셨습니까?) 아니요. 들어갈 때와 입장이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박 전 차관이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의 칼끝은 비자금 조성까지 향하는 듯합니다.
박 전 차관이 포항 기업인인 이아무개 제이엔테크 회장을 통해 파이시티쪽 자금뿐 아니라 다른 비자금도 조성했을 가능성을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비자금 조성이 사실이라면 이 비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도 궁금합니다.
박 전 차관이 개인적으로 쓰기 위해 막대한 비자금을 만들었까요?
검찰의 수사를 끝까지 지켜봐야 할이지만, 박 전 차관에 대한 수사를 지켜보는 청와대로서는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설령 대통령은 부정한 돈의 정체를 몰랐다 하더라도 이 대통령의 정치 멘토인 최시중 전 위원장과 측근인 박 전 차관의 부정 비리 혐의가 드러난다면 대통령으로서도 할 말이 없을 듯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는 인물이 20여 명에 달합니다.
이것만으로 이명박 정부는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셈입니다.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고, 완전무결한 도덕군자가 있을 수도 없습니다.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겠죠.
그래도 우리는 일반인보다 정치권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 그리고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이 갖춰야 할 제1 덕목이 바로 도덕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도덕성을 갖춘 이들이어야만 정치를 맡길 수 있고, 나라를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어야만 우리 사회를 앞으로 더 나가게 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국민의 이런 소탈한 바람조차 정치인과 정치권은 정말 들어줄 수 없는 걸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김형오 / hokim@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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