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신적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어제 초췌한 모습으로 검찰청사에 들어섰습니다.
오늘 새벽 조사를 마치고 나온 최 전 위원장의 얘기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최시중 / 전 방송통신위원장
- "청와대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죄송하고 사죄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대통령께서 해야 할 일이 많은 데 짐이 또 하나 얹혔다고 생각하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루 전 파이시티 브로커 이동률씨로부터 받은 돈을 2007년 대선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고 말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돈을 대선 여론조사에 썼다는 말은 얼떨결에 나왔고, 개인적 활동을 하며 모두 썼다고 말을 바꿨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습니다.
청와대 심정은 복잡할 듯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일등 공신이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착잡한 일이고, 다른 사람도 아닌 최 전 위원장이 대선자금을 운운하면서 수사의 칼날이 청와대를 향할지도 모르게 한 것도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을까요?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은 또 있는 것 같습니다.
이재오 의원은 어제 트위터에 '사람이 젊어서는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늙어서는 지조를 소중히 지켜야 한다'고 썼습니다.
누구를 가르켜 한 말일까요?
바로 이상득 의원을 지칭한 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이상득 의원이 전날 박근혜 위원장과 오찬에서 박 위원장이 훌륭한 리더십으로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 말을 비판한 셈입니다.
특히 이상득 의원이 '내가 사무총장일 때 이재오·김문수가 초선이었는데, 통제가 안 돼 이를 먹었다'며 이재오 의원을 깎아내린 것에 대해 심기가 불편했을 법합니다.
이상득 의원 역시 파이시티 브로커 이동률 씨 수첩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창업 공신인 6인회가 몰락하면서 서로 물고 무는 모습을 보는 국민의 마음은 어떨까요?
한쪽에서 배신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면, 정치권 다른 한쪽에서는 담합으로 시끄럽습니다.
지난 24일 새누리당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다음 달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대표와 국회의장, 원내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을 누가 누가 맡는다는 내정자 리스트가 돌았기 때문입니다.
문건의 주인공들은 모두 친박계였습니다.
친박계 중진 의원 주도로 친박들이 한 호텔에 모여 그렇게 결정했고, 이 내용이 소장 쇄신파들에게 들어가 쇄신파들이 전당대회를 보이콧하겠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새누리당과 친박계는 리스트가 사실이 아니라고 펄쩍 뛰었습니다.
어제 뉴스 M에 출연했던 친박계 유정복 새누리당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유정복 / 새누리당 의원
- "정치권에서야 얼마든지 개인이든 또는 몇 명이 만나서 이런 것이 좋지 않겠느냐. 의견 나눔이 있을 수 있고 또 나름대로 분석도 가능하지만 그것이 당 차원에서나 또는 어떤 계파라고 하는 차원에서 논의하거나 한 바는 전혀 없습니다."
유 의원 말대로 친박 중진 2~3명이 만나서 지도부 구성과 관련해 이런저런 의견을 나눴는데, 누군가 왜곡해 확대 재생산했다는 뜻일까요?
그렇다면, 친박계 내부에서 또는 친박과 비박간 권력투쟁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는 말일까요?
전당대회를 통해 뽑아야 할 지도부를 사전에 힘있는 친박 중진 2~3명이 모여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이들에게는 '사전 담합'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어제 폭발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박 위원장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 "총선 끝난 지 불과 며칠 됐다고 그거 잊고 그렇게 절절하게 국민 호소했던 마음 잊고 사실 아닌 왜곡된 이야기들을 지어내서 그게 당 안에 떠돌아다니고 확대 재생산되고 언론플레이하고 당 모습 흐트러지고 분열로 가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면 이거 또 한 번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마 소문의 진원지로 알려진 친박 중진 2~3명이 7분 동안 쏟아낸 박 위원장의 이 말을 직접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민주통합당도 담합 논란으로 시끄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친노와 비노로 갈라져 갈등 양상을 빚던 지도부의 큰 그림이 이해찬 당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로 정리됐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이해찬 전 총리가 어제 박지원 의원을 두 차례 만나 "친노와 비노가 다투지 말고 투톱 체제로 가자'며 이렇게 합의했다는 겁니다.
이해찬 전 총리와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만남이다', '대선 승리를 위한 최상의 체제다'라는 자평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내대표 출마와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하던 다른 의원들은 격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한 이낙연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이낙연 / 민주통합당 의원
- "이해찬-박지원 담합은 민주적이지도 감동적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담합은 국민이 민주통합당에게 기대하는, 민주통합당이 지향해야 할 정치 방식과는 거리가 멉니다."
특히 박지원 의원이 이해찬 전 총리를 만나기에 앞서 문재인 고문을 만났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당헌 당규상 원내대표는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를 관리하고, 여기서 선출된 당대표는 대선후보를 뽑는 경선을 관리하게 됩니다.
결국, 두 사람이 손을 잡기에 앞서 문재인 고문을 만났다는 것은 미리 대선주자까지 정하고 가겠다는 뜻일까요?
다른 대선 후보들이 이를 순수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어쨌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바뀌고, 권력욕에 따라 담합과 이합집산이 수시로 벌어지는 정치권.
내일은 또 누가 누구에게 등을 돌리고, 누가 누구와 만나 몰래 속닥일까요?
웬만한 삼류 조폭영화보다 더 삼류 같다고 느낄법한 정치권의 한 단면이었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hokim@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