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의 시사 엿보기] '눈물'의 의미와 보이지 않는 손

여야의 공천이 대략 마무리됐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공천을 받은 사람들과 탈락한 사람들의 희비는 있기 마련입니다.

친이계 핵심으로 당 대표까지 지낸 안상수 의원은 불출마 기자회견 도중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 인터뷰 : 안상수 / 새누리당 의원(15일)
- "단 한 번도 당적을 바꾸지 않았던 그 지조와 뼛속 깊이 새겨진 당에 대한 애정으로 올바르고 참된 보수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저를 희생하겠습니다."

안상수 전 대표는 이번 공천에서 탈락한 친이계와 이명박의 사람들을 모아 이른바 비박 연대 또는 신당까지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당에 남기로 했습니다.

당은 자신을 버렸지만, 자신은 당을 버릴 수 없었다는 뜻일까요?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의 최측근 진수희 의원도 눈물을 삼키며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 인터뷰 : 진수희 / 새누리당 의원(15일)
- "당이 원망스러워서 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지만 나를 재선 의원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키워준 당을 차마 떠날 수가 없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혹독하게 비판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도 무소속 출마 뜻을 접고 불출마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앞서 4선을 지낸 김무성 의원도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당에 남기로 했습니다.

뉴스 M에 출연했던 김무성 의원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무성 / 새누리당 의원(14일)
- "저에게 가해진 억울함 때문에 정권 재창출에 누가 되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겠다 그렇게 판단하게 된 겁니다 뭐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그 내부에서 해결하지 않고 이혼을 해버리면 여러 가지 후유증이 남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금방이라도 당을 뛰쳐나갈 것 같았던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들의 눈물을 보며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습니다.

▶ 인터뷰 : 박근혜 /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 "공천을 받지 못한 많은 의원과 후보들이 당의 결정에 승복하고 백의종군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줬다. 이런 선당후사의 정신이 새누리당의 저력입니다."

박 비대위원장의 말처럼 이들은 정말 선당후사, 그러니까 자신보다 당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이들의 탈당을 막은 걸까요?

탈당이나 무소속 출마 쪽으로 기울던 친이계 의원들의 마음이 돌아선 것은 공교롭게도 지난 12일 이명박 대통령의 이 한마디 이후부터였습니다.

▶ 인터뷰 : 이명박 대통령
- "대통령으로서 당직을 갖고 있으면 공정한 선거를 할 수 없고 탈당해야만 공정한 선거를 할 것이라고 국민이 믿지 않을 것입니다."

공정선거를 위해 새누리당을 탈당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지만, 어쨌든 대통령이 탈당하지 않겠다는 뜻이 공개적으로 전달된 셈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에 남겠다는 뜻이 확인되자,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고민하던 친이계 의원들과 이명박의 사람들이 모두 불출마와 함께 당 잔류를 선언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당에 남아 있는데, 이 대통령을 따르는 사람들이 당을 나갈 수는 없다는 뜻이었을까요?

보이지 않는 손은 정말 있는 걸까요?

오늘 민주통합당 김유정 대변인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한통을 공개했습니다.

"그간 맘고생 많았어요. 이애주, 한영실, 홍사중께 인사를. 사랑하시는 아기와 많은 대화를!!ㅇㄷㄱ올림. 3월8일 오후 6시55분"

홍사중은 홍사종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장의 오타로 이애주, 한영실, 홍사종은 모두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들입니다.

ㅇㄷㄱ은 청와대 이달곤 수석이라고 김 대변인은 주장했습니다.

김 대변인은 이 문자의 수신자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사랑하시는 아기'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으로 미뤄 볼 때 김유정 대변인과 이름이 비슷한 김희정 전 청와대 대변인이 수신자일 것이라는 추측이 돌고 있습니다.

김희정 전 대변인은 현재 임신 7개월로 부산 연제구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달곤 청와대 수석이 김희정 후보에게 보내려 했던 문자를 민주통합당 김유정 대변인에게 잘못 보냈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문자를 보낸 날짜입니다.

김희정 후보가 공천을 확정받은 날은 3월9일인데 이 축하문자를 보낸 날짜는 하루 전인 3월8일 오후 6시55분입니다.

김희정 후보가 공천을 받게 될 것을 청와대 이달곤 수석이 하루 전에 미리 알았다는 얘기일까요?

그렇다면, 정말 청와대가 공천에 개입했다는 뜻일까요?

김유정 대변인의 말입니다.

▶ 인터뷰 : 김유정 / 민주통합당 대변인
- "이 수석이 어느 후보에게 보낸 메시지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청와대는 답하기 바란다.새누리당은 공천 혁명을 주장하지만 청와대와 박 위원장의 '짝짜꿍 공천'일 뿐"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달곤 수석은 차를 타고 가다가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문자를 잘못 보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문자를 여러 개 보내서 김유정 민주통합당 대변인에게 문자를 보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문자를 잘못 보내긴 했지만, 공천에 개입한 적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누구의 말이 사실일까요?

경제학에서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정치에도 있는 걸까요?

세상일이란 때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메커니즘 또는 기제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란 더더욱 그런 기제가 많이 작동하는 영역이겠죠.

시간이 지나고 때가 되면 그 메카니짐이 밝혀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영원히 묻힐까요?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hokim@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