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수부가 노무현 대통령을 조사할 당시 법무부 장관을 하던 김경한 변호사는 지난달 28일 대검 중수부장에게 전화 한 통을 걸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자신이 노 대통령 서거 당시 노 대통령과 그의 가족에 대한 수사가 중단됐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해명하기 위해섭니다.
김 전 장관은 노 대통령 서거 당시 '충격과 비탄을 금할 수 없다. 현재 진행 중인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수사는 종료될 것으로 안다' 딱 이렇게 두 줄의 말만 했다는 겁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노 대통령 서거로 종료가 됐지만, 그의 가족에 대한 수사는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다는 의미일까요?
김 전 법무장관이 후배인 현직 대검 중수부장에게 이런 전화를 건 것 자체가 수사 개입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전화를 건 사실을 대검 중수부가 스스로 밝혔다는 겁니다.
대검 중수부는 왜 이런 민감한 전화 내용을, 또 어찌 보면 사적인 전화 내용을 이례적으로 기자들에게 공개했을까요?
김 전 장관의 입을 빌려 딸 정연씨 등 노 전 대통령 가족에 대한 수사가 정당한 것임을 입증하려고 전화 내용을 공개한 것일까요?
노 전 대통령 가족에 대한 수사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법리적으로 해석이 분분합니다.
소송의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은 서거했기 때문에 공소권이 없지만, 그의 가족이 불법 자금을 받았다면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정연씨에게 미국 뉴저지주 소재 고급 아파트를 판 미국 시민권자 경모씨가 13억 원을 100만 달러로 환전해 전달받은 것으로 확인되면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경 씨가 처벌을 받는다면, 이 돈의 출처를 쫓는 검찰로서는 정연씨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입니다.
정연씨가 직접 돈을 준 것이라면 정연씨 역시 외국환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고, 혹 누군가가 정연씨를 대신해 돈을 보낸 것이라면 정연씨가 불법 자금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론도 있습니다.
누군가 딸 정연씨에게 돈을 줬다 하더라도 그것은 자연인인 정연씨를 보고 준 것이 아니라, 고 노무현 대통령을 보고 줬을 것이라는 추론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노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부인 권양숙 여사나 딸 정연씨가 노 전 대통령 모르게 금품을 수수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노 전 대통령을 보고 준 돈인 만큼 검찰의 기소 대상은 노 전 대통령 한 사람뿐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피의자인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만큼 처벌할 대상이 사라졌고, 그의 가족들은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어느 쪽 주장이 맞을까요?
어쨌든 사실상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재개는 정치권에 큰 파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안형환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의 미국 아파트 구입 의혹에 대해 국민이 많이 궁금해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검찰은 의혹이 생기지 않도록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민주당 문재인 상임고문도 관련이 있다면 수사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상돈 비대위원도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제 MBN 뉴스 M과 가진 인터뷰 내용입니다.
▶ 인터뷰 : 이상돈 / 새누리당 비대위원
- "노무현 대통령이 비극적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수사가 중단됐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점 같은 것이 남아 있는 것이죠. 나는 모른다고 말씀하시고 비극적인 그런 사태가 발생한 거죠 그러나 그 문제에 의문점은 남아 있는 겁니다."
친노 진영은 발끈했습니다.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천호선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친노 후보가 대거 출마하면서 노무현 대 이명박의 구도가 형성되자, 노무현 대통령과 친노 세력을 부도덕한 세력으로 몰고 가려는 저들의 의도가 엿보인다고 비판했습니다.
정연씨에 대한 새누리당의 수사 요구는 다분히 문재인 상임고문과 이번 총선에 출마한 친노세력을 겨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사가 가져올 역풍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상돈 비대위원의 말 계속 들어보시죠
▶ 인터뷰 : 이상돈 / 새누리당 비대위원
- "우리로서도 당혹스러운 것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지난 3년간 조용히 있다가 다시 이 문제를 재개해서 수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것은 총선을 향한 당리당략이 아니냐 그런 역풍이 있을 수 있죠. 그 점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에게 이번 선거의 최대 적수는 구민주당계가 아니라 친노세력일지도 모릅니다.
일부에서는 박근혜 대 노무현 구도라는 말까지 들릴 정도입니다.
그래서 딸 정연씨에 대한 검찰 수사는 그 결과에 따라 어느 한 쪽에 치명상을 줄 수도 있습니다.
새누리당에게 그 바람은 순풍일까요? 역풍일까요?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 hokim@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