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국회의장이 결국 사퇴했습니다.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현역 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에게 돈 봉투를 돌렸다는 의혹을 결국 털지 못하고 국회의장 사퇴라는 사상 초유의 비극을 낳았습니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한종태 국회 대변인을 통해 사퇴문을 대신 발표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 인터뷰 : 박희태 / 국회의장
-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며 국회의장직을 그만두고자 한다. 모든 것을 짊어지겠다. 관련된 사람이 있으면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라"
박희태 의장은 이승만, 이기붕, 박준규 등에 이어 국회의장 임기를 마치지 못한 역대 4번째 의장이 됐습니다.
특히 비리관련 사건과 연루돼 현직 의장이 불명예 퇴진한 것은 박 의장이 처음입니다.
박희태 의장은 그동안 돈 봉투 사건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관련 의혹을 철저히 부인했습니다.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사퇴하라는 압박이 줄을 이었지만, 완강히 거부했던 박 의장이 돌연 심경을 바꾼 이유는 뭘까요?
자발적인 의사라기보다는 조여오는 검찰 수사에 백기를 들었다는 것이 어쩌면 더 솔직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찰은 박희태 캠프 측이 전당대회 직전 5천만 원 상당의 수표를 현금으로 바꾼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희태 의장의 집사로 불리는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은 2008년 7.3 전당 대회 일주일 여를 앞두고 천만 원권 수표 4장을 은행에서 현금으로 바꿨습니다.
별도의 천만 원도 당시 박희태 캠프 회계담당자로 넘어가 현금화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습니다.
이 돈은 앞선 2월쯤 라미드 그룹 계열사 사건을 맡아 받은 수임료 1억 원 가운데 일부였습니다.
결국, 박 의장 캠프 측은 라미드 그룹으로부터 미심쩍은 돈 1억 원을 받았고, 이 돈이 전당대회 직전 현금으로 바뀌어 고승덕 의원과 안병용 은평구 당협위원장에게 흘러갔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수사 방향입니다.
박희태 의장을 압박한 것은 또 있습니다.
애초 고승덕 의원에게 300만 원을 돌려받았던 고명진 전 비서가 검찰에서 진술을 바꾼 것입니다.
고명진 씨는 처음에 고승덕 의원으로부터 300만 원을 돌려받고 나서 자신이 개인적인 용도로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진술을 번복해 이 돈을 조정만 비서관에게 돌려줬고, 당시 박희태 캠프 상황실장이던 김효재 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상황 보고를 했다는 겁니다.
고승덕 의원이 검찰에서 밝힌 대로 300만 원을 돌려주고 나서 '왜 돈을 돌려줬느냐고'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바로 김효재 정무수석이었을까요?
고명진 씨의 말은 더 충격적입니다.
한 언론이 고 씨의 '고백의 글'이라고 보도한 내용을 보면 '정작 책임 있는 분이 자기가 가진 권력과 아랫사람의 희생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결단을 내렸다'는 말이 나옵니다.
진실을 감추려고 시작된 거짓말이 하루하루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이로 말미암아 이 사건과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허위 진술을 강요받았다고 폭로했습니다.
고 씨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권력을 이용해 아랫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한 사람은 김효재 수석일까요?
김 수석은 의혹을 부인하며 고승덕 의원과 일면식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김효재 수석을 소환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어쨌든 상황은 매우 급하게 바뀌었고, 박희태 의장으로서는 더는 모르쇠로 일관하기 어려워진 셈입니다.
어쩌면 검찰 소환조사까지 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야의 말 들어보시죠.
▶ 인터뷰 : 황영철 / 새누리당 대변인
- "늦은 감이 있지만, 고뇌에 찬 결단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 인터뷰 : 박영선 /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 "박 의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하는데 너무 늦었다. 국회의장이 이렇게 물러나야 하는 현실이 대한민국을 슬프게 한다"
친이계였던 박희태 의장의 사퇴, 그리고 청와대 정무수석의 검찰 수사는 총선에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입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박 의장 사퇴가 MB정부 실세책임론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박 의장은 이명박 대통령 탄생의 공신인 6인회 멤버로 이제는 이재오 의원만 남았습니다.
홍준표 새누리당 전 대표의 공천 신청 포기에 이어 그동안 미적거렸던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와 용퇴를 가져오는 기폭제가
대다수 친이계 의원들과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은 여전히 선거에 나가려고 하지만 당 안팎의 여론은 더 안 좋아졌습니다.
친이계의 몰락이라고 하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요?
정권 탄생의 주역, 그리고 권력의 실세로 불렸던 친이계가 이제는 몰락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는 것은 비단 저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