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의 대상에 오픈런 감행
탕후루와 밤양갱에 이은 잠깐의 인기?
앰비슈머(ambi-sumer:우선 순위에만 돈을 쓰는 소비자). 대부분 두바이 초콜릿의 실체를 접해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건 일종의 실재하지 않는 허상(시뮬라크르:simulacre)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짜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고 오픈런을 감행한다. 이 현상에서 감지되는 사실은 허기를 때우는 음식보다, 순간의 쾌감을 입 속에 전하는 달콤한 간식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바로 앰비슈머들에 의해서다.
↑ ‘서진이네2’ (사진 tvN 갈무리) |
나영석 피디의 ‘서진이네2’의 인기에서도 보여지듯, 대부분의 TV 프로그램과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소재들 역시 여행하고, 먹는 것이다. 현 시대의 소비자들이 가장 관심 가지는 행위다. 특히 먹는 것은 ‘먹방’이라는 한국적 신조어의 글로벌화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네 삶 속에서 가장 핫하고 힙한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논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도 음식이고, 그중에서도 디저트 및 간식이 자주 등장한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트렌드 신조어인 앰비슈머는 ‘양면성(ambivalent)’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우선 순위에 있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지만 후순위에 있는 것에는 최대한 돈을 아끼는 소비자’를 뜻한다. 앰비슈머의 대두는 음식 트렌드에도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몇만 원짜리 디저트에는 인색하지 않으면서, 만 원짜리 밥 한끼는 벌벌 떨며 아끼는 주변의 많은 사례들. 이것이 바로 앰비슈머의 등장이다.
이 탓에 5성급 호텔의 망고 빙수를 먹고, 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를 때우는 현상들도 종종 목격된다. 사실 이 행위 자체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현대의 소비자들은 자신의 소비에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고, 소비 행위의 의미를 명확하게 두기 때문이다.
↑ 탕후루 |
동네마다 탕후루 가게 몇 개씩은 들어섰다. 그런데 지금은? 건강 유해 (특히 어린이들의 치아) 음식이라는 비평들과 함께, 일회적 인기 아이템이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도 100m 건너 하나씩은 보였던 탕후루 가게가 지금은 단 한 개만이 남아 있다. 기존 가게들의 유리 창에는 ‘임대 문의’라는 슬픈 네 글자만 보인다.
↑ 마라탕 |
여기서 중요한 건 과거와 달리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힘이 거세졌다는 거다. 먹방이라는 소재가 탐스러운 비주얼뿐만 아니라 ASMR이라는 사운드적 쾌감까지 전달하기 시작하면서 유튜브는 특히나 음식 트렌드를 선도하는 최전선의 플랫폼이 되었다. 과거에는 TV 프로그램에서 시작되어 인기 몰이를 했었던 것을 반추하면 꽤나 많이 달라진 형국임에 틀림없다. 먹방 유튜버들이 되려 연예인이 되어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새로운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동시에 새로운 (간식) 음식 트렌드의 회전 간격이 급격히 짧아진 시대라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어졌다. 혹시 ‘밤양갱’을 기억하는가? 뮤지션 비비의 노래를 통해, 또 일종의 (할매와 밀레니얼의 합성어인)’할매니얼’에 의해 떠오른 추억의 간식, 밤양갱의 무서운 판매 돌풍 역시 빠르게 저물었다. 노래의 순간적인 인기 몰이와 함께 반짝 떠올랐다가 급격하게 가라앉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의 최고 인기 아이템은 무엇일까?
우리는 진짜 ‘두바이 초콜릿’을 먹었나
근래에 이런 뉴스들이 온라인에 확산되었다. ‘CU, 건면 넣은 두바이 스타일 초콜릿 출시’ ‘GS25와 세븐일레븐, 이달 두바이 초콜릿 선봬’. 이 두 기사 타이틀의 공통 단어는 ‘두바이 초콜릿’이다. 굉장히 생소한 이름이다. ‘두바이와 초콜릿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먼저 떠오른다. 초콜릿은 초콜릿인데 어떤 맛 초콜릿일까라는 또 다른 의문도 생긴다.
두바이 초콜릿을 최근에 내놓은 편의점 업계는 대박이 났다. 나는 이 단어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처음 들었다. 산에 약초를 캐러 간 개그우먼 박나래가 방송인 전현무에게 “요즘 세상에서 난리 난 간식”이라며 건넨 음식을 보고 처음 접했다. 초콜릿 속이 녹색의 어떤 소로 채워져 있었는데 국수 같은 것도 있었다.
SNS 피드를 보다 보면 ‘두바이 초콜릿’이 분명한 트렌드 키워드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아니 심지어 열풍이 뜨겁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두바이 초콜릿은 원래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 소재의 디저트 업체 ‘픽스 디저트 쇼콜라티에’의 ‘피스타치오 카다이프 초콜릿’을 뜻한다. 초콜릿에 견과류의 일종인 피스타치오와 중동식 면의 한 종류인 ‘카다이프’가 들어 있는 제품.
카다이프라는 생소한 소재는 피스타치오와 어떻게 어울리는 걸까? 또 초콜릿과는 어떤 조화를 이룰까? 아무튼 두바이 초콜릿이라는 것은 초콜릿 속에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와 면들이 쏙쏙 박혀 있는 형상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눅진하다. 그러니 속에 잼 등이 들어있는 쿠키와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랍에미레이트의 초콜릿 제품이 왜 한국에까지 열풍을 불어왔을까?
시작은 이랬다. 2023년 12월, 아랍에미레이트의 인플루언서가 SNS에 올린 해당 제품의 광고 영상이 전 세계적으로 입 소문을 탄다. 그 영상은 무려 3억 회 이상 재생되었다. 이 정도면 현지에서 이미 픽스 디저트 쇼콜라티에의 제품은 구하는 게 어려워졌다고 보면 된다. 국내 유튜버들이 발 빠르게 이 트렌드를 가져와 직접 만들면서부터 두바이 초콜릿 열풍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실 진짜 두바이 초콜릿을 맛 본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들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두바이 초콜릿은 오리지널이 아닌 일종의 복제품들인 셈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초콜릿 공장도 운영하는데 이곳에선 당이 없는 건강한 초콜릿을 생산, 판매 중이다. 임원 회의 시간에 경영진이 “우리도 두바이 초콜릿을 만들어서 팔 수 있냐?”고 질문했다. 초콜릿 담당 임원은 “설비를 갖추는 시간도 걸리겠지만, 일단 유행 기간이 너무 짧을 것이고, 동시에 건강을 지향하는 우리네 의도와 맞지 않는 제품입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여기에서 중요한 산업적 명제가 도출되었다고 생각한다. 첫째, 두바이 초콜릿의 인기 역시 짧을 것이다. 둘째, 세상의 모든 맛난 음식들이 그렇듯 건강 이슈가 도출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SNS와 앰비슈머의 동거
앞서 언급한 편의점 업계가 그들이다. 이들의 두바이 초콜릿은 이름만 있을 뿐이다. 현대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주창한 시뮬라시옹(Simulation) 이론과 딱 맞아 떨어진다. “실재가 실재하는 것이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 말이다.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두바이 초콜릿들은 어찌 보면 그것의 대체물인 시뮬라크르(simulacre : 모조품, 가짜 물건)의 미혹일 수 있기 때문이다.
두바이 초콜릿의 열풍은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 무한한 확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태풍 속 갑작스런 햇살이 비치듯, 그 광풍 역시 어느 순간 뚝하고 그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폭풍이 이내 불어 닥칠 것이다. 맛을 떠나 SNS에 적합한 비주얼을 가진 간식은 새로운 시대의 소비자에게 금세 부각되고, 그것이 또 트렌드로 확산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두바이 초콜릿의 후발 주자가 무엇인지를 예측하긴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인플루언서가, 어떤 유튜버가 기발한 먹거리를 끊임없이 피드에 던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수많은, 일종의 밈처럼 퍼져 나가는 셀 수 없는 무한의 간식들 중 하나가 픽업되고, 그것이 또 트렌드 명맥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런 간식 또는 디저트의 인기는 앞서 언급한 앰비슈머의 등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간식 값이 음식 값보다 비싼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게 바로 앰비슈머 증가의 사례다. 이 탓에 백화점들 역시 조금만 인기 있는 디저트 브랜드가 있다면 곧장 입점하도록 회유하고 설득한다.
이제 백화점 관계자들은 노포 평양냉면을 백화점에 입점시키는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및 일러스트 픽사베이, 픽스디저트쇼콜라티에 인스타그램, 게티이미지뱅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42호(24.08.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