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길이, 때론 쉼이, 때론 즐거움이 여행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지친 몸과 영혼을 다독이기도 하고,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너무 익숙한 곳에서 누리는 뻔한 여행 대신 다소 낯선 곳에서 만나는 새로움 역시 여행의 기쁨이다. 복잡하고 분주한 서울 바로 옆에 그런 여행지가 있다. 군포와 안양, 그리고 의왕. 지척의 도시, 그곳에 멋진 풍경과 시간이 있다.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가도 좋은 곳.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는 세 도시를 묶어서 여행해도 좋다.
↑ 군포 수리산 |
오랜 역사와 전통이 면면히 흐르는 도시임에도 마치 처음 마주하는 것 같은 생경함이 있는 곳, 경기 중남부의 세 도시 군포와 안양, 의왕의 이미지다. 서울과 지척이라 오히려 눈길이 제대로 가지 않는 도시가 아니었을까. 마치 등잔의 밑처럼 어둡고 낯선. 그러나 그곳에 잠깐이라도 머물거나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고고한 역사의 품 안에서 사람과 자연,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져 사람 살기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도시가 되었다는 것을. 천혜의 자연을 품은 군포의 고즈넉한 산책길, 예술의 도시 안양,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을 통해 평안한 쉼과 여유를 제공해주는 의왕. 세 도시가 만들어낸 지금의 이미지는 친근하면서도 뭔가 색다르다. 언제 만나도 좋을 세 도시의 ‘찐’ 매력은 바로 이것이다.
↑ 의왕 왕송호수 |
군포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우스갯소리 같지만 아마도 다수의 ‘현대인’들은 ‘피겨 여왕’ 김연아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금 더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가 다녔던 ‘수리고’까지 꼼꼼하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군포가 내세울 게 변변히 없는 도시라기보다는 김연아의 이미지와 오라(aura)가 그만큼 컸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하고자 하는 얘기는 그게 아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김연아가 아니더라도 군포는 썩 괜찮은 도시이고, 살펴보면 볼수록 친근해지는 도시라는 것이다.
↑ 수리산 가는 길의 갈치호수 |
군포를 설명하는 것 중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는 수리산이다. ‘수리’라는 말은 봉우리의 모양새가 독수리를 닮았다는 뜻도 있지만, 불가의 진리를 깨닫는다는 뜻의 수리(修理)와 왕손이 이곳에서 수도를 했다는 뜻의 수리(修李)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두 군포의 상징인 수리산에 얽힌 이야기인 만큼 군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수리산을 알아야 한다. 군포의 진산인 수리산은 도시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 숲과 골, 나무와 바위가 수려한 천혜의 자연이지만 도시와 바로 이어져 시민들이 쉽게 찾아가 즐기는 곳이 됐다. 명산들이 즐비한 경기도지만 그 가운데 세 번째로 도립공원에 지정됐을 정도로 빼어난 산으로 그만큼 인기가 높다.
이렇듯 도시와 자연의 조화로운 만남을 이어주며 군포를 살기 좋은 전원도시로 만든 수리산 안에는 보석 같은 숲길이 있다. 산자락 곳곳을 잇는 수릿길이다. 수리산 품에서 굽이굽이 흘러내린 길은 농촌 마을의 들과 밭과 논을 지나 도심의 골목골목까지 이어지며 다양한 색깔의 길을 만들어낸다. 자연 그대로의 소박함과 정겨움이 가득한 걷기 좋은 길이다. 그 길 위에 서면 맑고 푸른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고 그리하여 몸과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다. 군포 수릿길은 크게 수리산둘레길, 수리산임도길, 자연마을길, 도심테마길로 나뉘고 그 안에 모두 14개의 다양한 걷기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어느 길을 걷든 산과 자연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명품 트레킹 코스다. 그중에서도 수리산임도길에 속한 바람고개길과 자연마을길에 속한 반월호수길은 자연의 정취를 흠뻑 느끼며 길 위에서 쉼을 얻는 매력적인 길이니 꼭 한 번 걸어보길 권한다.
‘안양(安養)’이란 불교에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극락정토의 세계를 말한다. 모든 일이 원만하여 즐겁고 괴로움 없는 유토피아의 세계인 것이다. ‘안양’ 지명은 약 1100년 전, 고려 태조가 세웠던 사찰 ‘안양사’에서 유래됐다. 그로부터 안양은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으로 지금에 이른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사통팔달의 교통 요지, 산세 수려하고 물 맑은 도시로 영화를 누려왔다. 도시의 대명사 격이었던 ‘유원지’와 공업단지의 흔적도 흐릿하게 남아 있지만 지금은 현대미술을 비롯한 문화예술이 빛나는 도시로 오롯이 서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안양예술공원이다.
↑ 전망대 |
안양예술공원은 안양유원지였던 자리에 들어선 국내 최초의 공공예술 테마파크다. 지난 2005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를 통해 안양유원지가 안양예술공원으로 바뀌고, 그곳에 시민 친화적인 문화예술 공간이 조성되었다.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공원 곳곳에는 예술작품들이 설치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산책하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레드벨벳 슬기의 ‘Uncover’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탄 그곳에는 노래 가사처럼 신비롭고 비밀스러운 작품들이 펼쳐져 있다. 현재 삼성산 산책로를 따라 전시되어 있는 작품은 약 60여 점. 나무와 풀, 바위 등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공간인 만큼 작품과 일반 시설물과의 경계가 모호하지만 기발한 전시품들은 야외 미술관 곳곳에서 빛이 난다.
↑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
안양의 문화와 역사에서 영감을 얻은 미술, 조각, 건축, 영상 등의 작품들은 순례, 놀이, 쉼, 순환 등 10개의 주제로 정리돼 설치되어 있으며 단순한 감상뿐 아니라 체험공간도 꾸며져 있다. 그 가운데 안양예술공원의 랜드마크 ‘전망대’는 꼭 가봐야 한다. 등고선 모양을 한 전망대는 큰 원을 그리며 올라가게 돼 있는데 전망대에 오르면 공원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작품 감상의 출발점이기도 한 ‘안양파빌리온’도 특별하다. 예술 관련 서적과 설치작품 전시 등 공공예술전문센터로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포르투갈의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건축물로 어느 각도에서도 같은 형태로 읽히지 않는 독특한 공간 구조를 지니고 있다. 또 공원 곳곳에 설치된 작품 역시 하나같이 포토제닉하다. 인증샷 명소로 손색 없는 공간이다. 공원 입구에 있는 현대 건축의 거장 김중업의 건축박물관도 꼭 한번 들러보자.
의왕은 ‘푸른 도시’라고 부를 만큼 깨끗한 자연 환경을 지니고 있다. 백운산과 청계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경관이 좋고 물과 공기가 맑아 사람 살기에는 최적이다. 멋진 호수는 유명해진 지 오래다. 백운호수 얘기다. 당초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문화예술이 싹을 틔우면서 시민들의 공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 의왕의 핫플레이스는 왕송호수다. 제방 길이 640m, 높이 8.2m, 만수 면적 29만 평의 저수지로 수면이 넓어 물고기가 많고 그래서 온갖 철새들이 들리는 곳이다. 지금 왕송호수에 가면 청둥오리, 원앙, 딱따구리, 박새와 같은 철새들을 볼 수 있다. 새의 종류만 해도 130여 종에 달하는 수도권 최대의 생태 호수다. 왕송호수에 번식하는 새와 생태를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는 조류생태과학관도 이곳에 있다.
↑ 의왕스카이레일(우측 위)와 왕송호수(아래) |
수도권 최대의 인공 생태습지인 왕송호수는 멋진 경관과 함께 레저와 문화가 결합된 공간으로 사랑받는다. 왕송호수는 최고의 일몰 여행지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하루 종일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하는 호수를 한 바퀴 빙 돌며 제대로 보고 싶다면 의왕 레일바이크를 추천한다. 아름다운 호숫가를 따라 도는 이 레일바이크는 원래 있던 철길이 아니라 순환 레일을 새로 깐 것이다. 호수의 경관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한 것. 최대 시속 80km로 350m를 달리는 의왕 스카이레일은 레일바이크보다는 좀 더 짜릿하다.
↑ 레일바이크 |
왕송호수의 빼어난 풍광을 온몸으로 느끼며 하늘을 나는 체험은 아찔한 스릴을 제공한다. 의왕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철도 특구로 지정된 도시다. 왕송호수 옆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5호 (23.2.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