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 친구 ‘하뚜’가 애견카페에서 연 ‘미니 어질리티’에 참가해 1등을 차지했다. 부상으로 받은 닭발 목걸이를 목에 걸고 찍은 사진에 폭소를 터뜨렸지만, 내심 부러운 것이다! 닭발 목걸이가 아니라 하뚜와 반려인이 보여준 환상의 궁합이. 대뜸 수리에게 물었다. “어이, 우리도 도전해 볼까?”
↑ (사진 언스플래시) |
‘어질리티(agility)’는 도그 스포츠로, 개와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장애물 코스를 완주하는 경기다. 1977년 영국에서 시작해 매해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세계 1등을 가리는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몇몇 도시에서 대회를 열고, 국제 대회에 참가할 대표 선수를 뽑기도 한다.
운영 방식은 이렇다. 개는 반려인의 지시에 따라 코스를 달리며 장애물을 뛰어넘고 경사면을 오르내리며, 일렬로 세운 막대 사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하고, 시소에 올라 균형을 잡는 등의 과제를 수행한다. 참가견의 크기와 기량에 맞춰 그룹을 나누고 그에 적합한 코스를 설계하므로, 품종이나 나이 제한도 없다. 다만 생후 6개월은 넘어야 좋은데, 골격 형성, 근력, 협응성, 집중력이 일정 수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승견 중에는 보더콜리나 파피용이 많지만 태생적으로 어질리티를 잘하는 품종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어질리티 영상을 보면 개들이 비호처럼 달리며 장애물을 뛰어넘거나 통과하는 모습에 넋을 놓게 된다. 단연 스포트라이트는 개를 비추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존재가 반려인, 즉 핸들러(handler)다. 대회마다 장애물 종류와 코스가 달라, 핸들러가 그것을 파악하고 개의 이동 경로와 장애물 통과법을 정확히 지시해야 한다. 그러니 개와 반려인은 서로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기민하게 사인을 주고받는다. 어질리티에서 겨루는 것은 개의 기량보다 반려인과의 ‘교감’인 셈이다.
바로 이 점이 내가 수리에게 어질리티를 제안한 이유다. 수리에게 날랜 움직임이나 완벽한 수행력을 바라진 않는다. 열두 살이 되도록 몰랐던 수리의 재능을 별안간 발견하거나, 대회에 나가 노익장을 과시하리란 기대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수리와 어질리티를 시작한다면 목적은 분명하다. 바로 ‘함께하는 놀이’다. 하루 중 대부분을 붙어 지내지만 노는 법을 모르는 나와, 노는 재미를 모르는 수리는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불안이 많고 사람도 개도 멀리하는 수리라 저 혼자 쉬는 시간을 좋아하겠거니 생각해 내버려 두는데, 가끔 장난을 걸고 집 안을 우다다 내달릴 때는 심심해 보이기도 한다. 공을 던지거나 터그를 흔들어 보여도 수리는 조용히 방석으로 돌아가 똬리를 틀고 눈을 감는다. 잘 놀아 주고 싶은데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몰라 무안하고 미안하다.
개에게 ‘놀이’는 단순한 재밋거리가 아니다. 놀이는 반려견과 온전히 교감한 ‘시간’으로 치환할 수 있다. 어질리티를 예로 들면 ‘위빙(막대 사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하는 게임)’ 하나를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 달리고 눈을 맞추었을까 가늠해 보게 된다. 그 시간에는 실패와 좌절의 지분도 크겠지만, 하이파이브를 외치고 폭풍 칭찬한 추억도 있을 테다. 놀이가 곧 교감한 시간인 것이다. 어질리티의 매력은 또 있다. 개에게 놀이나 물체에 대한 두려움을 감소시키고 성취감과 자신감을 높이며 꿀잠을 보장해 준다. 반려인에게 또한 적당한 운동량을 제공한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당장 테스트해 보자. 어질리티 기구를 판매하는 온라인 숍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집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와 막대 몇 개만으로도 그럴듯한 장애물을 만들 수 있다. 초심자라면 난이도 조절은 필수. 허들은 막대를 바닥에 놓고 넘어서기 시작해 막대를 높여 가며 뛰어넘게 하고, 터널은 짧은 직선형부터 긴 곡선형으로
방바닥에 막대걸레를 눕혀 두고 수리에게 넘어서라고 지시해 보았다. 역시, 곧바로 엎드려 버렸지만 좌절하지 않기로 한다. 놀 줄 모르는 우리가 놀아 보려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중요하니까.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4호(23.1.24,3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