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전신마취(general anesthesia)가 개발되지 않았다면 웬만한 외과수술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전신마취 환자는 수술하는 동안 의식을 잃습니다. 그래서 장시간의 어려운 수술도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생리 현상은 1846년 미국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에테르를 마취제로 쓴 한 종양 환자의 사례로 처음 입증됐습니다.
그 후 170여년이 지났지만, 전신마취 환자가 어떻게 의식을 잃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 과학자들이 그 비밀의 열쇠를 세포막 지질에서 발견됐습니다.
마취 약물에 노출되면 질서 정연했던 세포막의 지질 클러스터(cluster)가 잠시 무질서하게 변했다가 되돌아오는데, 이 일시적인 상태 변화가 일련의 복잡한 의식 상실 과정을 촉발한다는 것입니다.
이 발견은 마취약이 세포막의 이온 채널에 곧바로 작용하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세포에 변화의 신호를 주는지를 둘러싼 오랜 논쟁에도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스크립스 연구소의 리처드 러너 박사팀은 2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국립과학원 회원인 그는 이 연구소 플로리다 캠퍼스의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마취가 이뤄질 때 가장 먼저 교란되는 건 '지질 뗏목'(lipid rafts)으로 불리는 세포막 지질 클러스터였습니다.
연구팀은 클로로폼에 담가뒀던 세포를 첨단 dSTORM 현미경으로 관찰했습니다.
이를 통해 GM1이라는 세포막 지질 클러스터가 포켓볼의 초구 '브레이크 샷'과 비슷하게 사방으로 퍼지듯 팽창한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구형으로 단단히 싸였던 GM1 클러스터 내부의 지질이 무질서한 형태로 변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GM1 내부에서 흘러나온 PLD 2(인지질 가수분해 효소)가 당구공처럼 움직이며 PIP2라는 다른 지질 클러스터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면 PIP2 클러스터의 TREK 1 칼륨 이온 채널과 지질 활성인자 PA(포스파티딘산)에 자극이 가해졌습니다.
이렇게 TREK 1 이온 채널이 활성화하면 뇌의 뉴런(신경세포)이 흥분 능력을 잃어 의식 상실로 이어진다는 걸 연구팀은 확인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스콧 한센 부교수는 "TREK 1 채널에서 칼륨이 분비되면 신경을 과도한 분극(hyper-polarize) 상태로 만들어 흥분하기 어렵게 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초파리 모델 실험에선 PLD 효소 발현을 막아 진정 작용에 저항하게 하면 결국 초파리가 의식을 잃는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이는 PLD가 임계점을 정하는 덴 도움이 되지만, 마취 민감성을 제어하는 유일한
러너 박사는 "우리가 발견한 이 경로가, 의식을 초월하는 다른 뇌 기능에 쓰인다는 덴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뇌의 또 다른 신비를 조금씩 풀어낼 토대가 마련됐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가 언급한 미지의 뇌 영역에는 수면을 유발하는 일련의 분자 작용 등이 포함됩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