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기]자가 [척]하니 알려드립니다! '인기척'은 평소에 궁금했던 점을 인턴기자가 직접 체험해보고 척! 하니 알려드리는 MBN 인턴기자들의 코너입니다!
서울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운행하는 공항철도와 대전 지하철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습니다. 바로, 임산부 배려석을 알려주는 분홍색 의자마다 자리를 차지한 인형입니다. 인형은 언제부터 이 자리를 지키게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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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철도 임산부 배려석에 있는 '나르' 인형(왼쪽), 대전 지하철 1호선에 있는 곰인형(오른쪽) /사진=MBN |
▶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인형…정체는?
공항철도는 지난 2013년부터 임산부 배려석을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구간의 특성상 우리나라 임산부 배려석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이용객 가운데도 임산부가 아닌 승객들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경우도 빈번했습니다.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로 된 4개국어로 임산부 배려석을 알리는 열차 내 방송을 진행해봤지만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결국 공항철도 측은 지난 7월 1일부터 열차의 모든 칸에 두 자리씩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하늘색 공항철도 마스코트 인형을 자리에 비치해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기로 했습니다.
대전도시철도공사도 지난해 11월 4칸으로 된 열차의 첫 번째 칸과 네 번째 칸에 ‘임산부 배려석’ 인형을 놓았습니다. 배려석을 명확하게 구분함과 동시에 이 자리를 이용하고 싶은 사람은 인형을 안고 앉으라는 무언의 압력으로도 작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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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철도 임산부 배려석에 있는 '나르' 인형(왼쪽), 대전 지하철 1호선에 있는 곰인형(오른쪽) /사진=MBN |
임산부 배려석에 인형을 놓겠다는 아이디어는 2016년 임산부의 날을 맞아 서울시 도시철도관리팀 및 광운대학교 이종혁 교수가 서울 지하철 9호선에서 진행한 공공소통 프로젝트(LOUD)로 태어났습니다. 분홍색으로 의자 색깔만 바꿔서는 사람들의 행동에 큰 변화가 없으니 한 발 더 나가보자는 것입니다. 임산부가 아닌 승객이 특히 남성 승객이 인형을 두 팔로 안고 이 자리에 앉아서 가기란 심리적으로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런 캠페인은 이른바 ‘넛지(Nudge)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넛지’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뜻으로, 사람들을 더 나은 선택을 하게끔 유도하지만 강압적으로 굴복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경제적 이득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유연하게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공중화장실 남자 소변기에 붙어 있는 파리 스티커를 이용해 깨끗한 화장실을 만드는 캠페인을 한다거나, 밟으면 재미있는 음악 소리가 나오게끔 해 에스컬레이터보다 계단을 사용하게끔 사람들을 유도하는 것들이 대표적인 넛지 효과를 이용한 사례입니다. 넛지라는 이름은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낸 <넛지(Nudge)>라는 책에서 유래했습니다.
넛지 효과는 두 지하철에서도 통했습니다. 인형을 놓고 난 이후 두 열차의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승객은 크게 줄었습니다. 공항철도를 매일 이용하는 A 씨는 “서울 내 지하철과 비교했을 때 배려석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눈에 띄게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공항철도와 대전도시철도공사에 접수된 ‘비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다’는 민원 건수도 크게 줄었습니다.
▶ 정작 임산부가 꺼리는 ‘임산부 배려석’?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습니다. 남성을 비롯한 비임산부도 그 자리를 꺼리지만, 정작 이 배려석을 이용해야 할 임산부들도 이 자리를 꺼린다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인형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공항철도에서 만난 한 임산부는 배려석에 앉아있는 내내 인형을 신경 쓰고 있었습니다. 임산부 B 씨는 “임산부가 눈치 보지 않고 앉을 수 있다는 건 좋지만, 아무래도 인형을 매번 빨지 않는 것 같아 위생이 의심스럽다. 접촉하기는 조금 꺼려진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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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석구석 더러워진 임산부 배려석 인형 /사진=MBN |
공항철도에 설치된 12개의 인형은 여러 사람의 손때가 타 얼룩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일부 인형의 발바닥 쪽에는 까만 먼지가 붙어 있고, 다른 인형의 머리 부분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긴 머리카락이 엉겨 붙어 있습니다.
공항철도에서 만난 다른 임산부 C 씨는 “다른 좌석이 비어있다면 임산부 배려석 말고 다른 좌석을 이용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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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1호선에 얼룩이 묻어 있는 곰인형 /사진=MBN |
대전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인형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곰인형의 머리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얼룩이, 다른 쪽에도 먼지로 보이는 시커먼 때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대전 1호선 이용객 임산부 D 씨는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인형의 위생이 걱정돼 노약자 배려석을 이용하거나, 일반 좌석이 비어있을 경우 그 자리를 이용한다”고 말했습니다.
임산부가 아닌 비임산부 승객이 배려석에 앉기라도 하면 인형들의 수모는 시작됩니다. 인형을 아예 좌석 밖으로 던져두고 앉거나, 등받이로 쓰기도 하고, 아예 깔고 앉는 모습도 보입니다.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고 옆 좌석에 앉은 한 남성은 인형은 가방 받침대로 쓰는가 하면 주먹으로 인형에게 화풀이하는 모습도 포착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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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형을 아무렇게나 다루는 이용객들 /사진=MBN |
유동인구가 많은 공항철도 노선의 홍대입구역~서울역 구간에서 승객들이 하차한 후 인형을 살펴보니 일부 인형은 이미 바닥에 나뒹굴며 발에 차이는 신세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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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떨어진 인형 /사진=MBN |
▶ 인형 관리는 어떻게…사실상 방치
공항철도 측은 “주 1, 2회 스프레이 형식의 약물 소독을 진행하고, 4개월마다 교체한다”고 했습니다. 대전도시철도 측도 “운행이 끝난 열차가 차량기지에 들어오면 직원들이 인형을 검수한다. 오염이 발견된 인형은 즉시 회수해 세탁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취재 도중 얼룩을 발견한 일주일 뒤 같은 자리의 같은 인형은 여전히 지저분한 모습이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소독이 되지 않았거나, 일주일에 한두 번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만으로는 인형이 깨끗해질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 ‘인형 치워주세요’ 민원도 속출
상황이 이러니 이제는 ‘인형을 치워달라’는 민원도 나옵니다. 인형을 설치한 지 한 달이 채 안 된 지난 7월 21일에 공항철도 사이트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는 ‘임산부 자리 인형 제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게시자는 “인형이 일부 비양심적인 사람들에 의해 바닥에 패대기쳐지고 뒹굴다 발에 치여 오염된 상태다. 감염에 취약한 임산부가 인형을 안을 바엔 없애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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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철도 고객의 소리 게시판에 올라온 민원 글 /사진=MBN |
정답은 없는 문제입니다. 다만 인형을 대신할 대안이나 묘수를 찾는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MBN 온라인뉴스팀 신형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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