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의 오늘은 어떤 날이었을까.
'오늘裏面'은 이러한 궁금증으로 시작됐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지는 뉴스와 사건들 속에서 울고 웃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오늘이면은 과거의 오늘이 가진 다른 의미를 추적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소외당하고 잊혀질 뻔한 사실들을 적습니다.
오늘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
↑ 출처 = 뮤지컬 로스트 가든 공식 홈페이지 |
120년 전 오늘, 4월 6일은 아일랜드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가 동성연애 혐의로 체포된 날입니다.
“경험이란 자기 잘못에게 부여하는 이름이다”
“인생에 비극은 단 두 가지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하는 것을 가진 것이다”
시니컬한 문장으로 삶을 통찰했던 촌철살인의 대가 오스카 와일드는 오늘날까지 ‘유효한’ 작가입니다. 그의 동화 ‘욕심쟁이 거인’은 지난해 ‘로스트 가든’이라는 이름의 뮤지컬로 각색돼 가수 김태우와 윤하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고, 동화 ‘행복한 왕자’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나 친숙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사내였습니다. ‘의상개혁이 종교개혁보다 중요하다’며 지방시나 릭 오웬스 패션쇼에서나 볼 수 있는 스타킹 반바지 패션을 시도해 19세기 댄디즘을 이끌었는가 하면, 지독한 독설과 퇴폐적인 에로티시즘, 성서 모독으로 보수 세력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1891년, 아내와 두 아이까지 있던 그는 16세의 연하남 ‘알프레드 더글라스’와 동성간의 사랑에 빠집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거리를 활보했고 호텔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리고 1895년 더글라스의 아버지 퀸스베리 남작은 이 사실을 사교 클럽에 폭로, 미소년과 유명 작가의 불륜관계라는 희대의 스캔들로 소용돌이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끝까지 “동성애는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된 아름답고 고결한 애정행위”라 항변했지만, 시대는 냉정했고 결국 법원에서 2년의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머리를 박박 깎인 채 지독한 노역을 하며 수감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는 옥살이를 하면서 자신의 연인 더글라스에게 편지를 씁니다. “내 심장은 당신의 사랑으로 피어난 장미입니다 … 나를 항상 사랑해주세요. 나를 항상 사랑해 주세요. 당신은 내 인생의 완벽하고 최고인 사랑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있을 수가 없어요 … 철학자에게 지혜가 있고 성직자에게 신이 있듯이 내게는 당신이 있어요.”
하지만 그는 버림받습니다. 감옥에 있는 동안 가족들은 이름을 바꾸어 사라졌습니다. 연인 더글라스는 연락을 끊고 훗날 여성과 결혼합니다. 출소한 오스카 와일드는 국적까지 박탈당하고 파리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가난과 지병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제 120년이 흘렀습니다. 오늘날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와일드가 살았던 그때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전 세계 16개 국가들이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등 인권에 기초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고, 지난 3월 17일, 미국 장로교 최대 교단 ‘PCUSA'는 동성간 결혼을 인정했습니다. 산하 117개 노회(입법, 사법 역할을 담당하는 교회 기관) 중 과반수인 86개 노회의 동의로 전면적인 교회법 개정이 이뤄진 것입니다. 기존의 교단 헌법에는 결혼의 정의를 “한 여자와 한 남자 사이의 계약”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올해 6월 21일부터 결혼은 “두 사람 사이의 계약”으로 바뀌게 됩니다.
미국 장로회의 이같은 결정은 정말 ‘파격’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등 성경 곳곳에는 동성애를 금지하는 명문들이 있습니다. 간혹 성경을 신의 말씀으로 삼고 의지해온 기존 교회들이 소극적으로 동성결혼에 대해 묵인하거나 동성애 성직자를 인정하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 성경에 명시된 결혼 개념을 정면으로 바꿨다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입니다.
반면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최근 서울대 연구에 따르면 국내 성소수자 548명 중에서 지난 1년간 한 번 이상 “자살을 생각한적 있다”고 응답한 이는 64.8%에 달했습니다. 10명 중 6~7명의 성소수자가 자살 충동을 경험한 셈입니다.
한 심리학 전문가는 “이들의 자살 위험은 매우 심각하지만 실태 파악이나 연구, 국가 차원의 예방책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세계적으로 동성애자를 인정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추세이지만 우리는 많이 늦었다”고 지적했습니다.
![]() |
↑ 출처 = 퀴어문화축제 페이스북 |
올해 서울시는 매년 이어져온 서울광장 퀴어문화축제를 불허하고, 성소수자의 차별 금지 조항을 포함시킨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을 무산하는 등 성소수자 인권문제로 연일 논란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취임 초부터 ‘인권도시 서울’을 내세우며 “모든 차별을 해소하겠다”고 했지만 잇따른 마찰에 성소수자 단체들은 섭섭함을 표하고 있
지난해 열린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였습니다.
많은 보수단체와 종교단체의 압력 속에서 성소수자들은 힘을 잃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의 행사 내용을 요약하는 슬로건은 올해도 공개됐습니다.
“사랑하라 저항하라”
영상뉴스국 박준상 인턴기자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