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광, 이루지 못한 세계챔피언의 꿈! 지도자로 다시 한번 세계챔피언을 꿈꾼다!'
한국 프로복싱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1980년대 많은 복서들이 세계챔피언을 꿈꾸었으며, 우상을 뽑는 질문을 하면 열에 아홉은 다른 국가의 챔피언이 아닌 한국의 챔피언들을 우상으로 답했을 정도로 한국 1970년대~1980년대는 한국 프로복싱의 황금기였습니다.
홍수환의 4전5기 신화를 지켜보며 챔피언의 꿈을 키웠고, 그 외에 염동균, 유제두, 김태식 등 기라성 같은 챔피언들이 한국 프로복싱의 전성기를 이끌며, 뒤 이어 유명우, 장정구, 박종팔 등과 같은 세계 프로복싱계가 기억하는 위대한 한국인 챔피언을 배출했습니다.
↑ 사진=정재광 복싱클럽 제공 |
9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정재광(전 동양챔피언)은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19살의 어린 나이에 프로에 대비하여, MBC신인왕전에서 우승을 거머쥐는 등 여러 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2000년대 당시 정재광 선수는 페더급 세계챔피언으로서 세계챔피언의 기대주이자, 유망주였습니다.
정재광 선수는 기대에 부응하듯이, KBC 슈퍼밴텀급 챔피언에 이어 한국복싱위원회(KBC, Korea Boxing Commission) 페더급 챔피언까지 이루며, 한국 챔피언을 두 체급 석권했으며, 2005년에는 TKO승으로 범아시아(PABA 동양챔피언)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하지만 세계챔피언을 꿈꾸며 승승장구 하던 정재광 선수에게도 한국권투위원회(KBC)의 오랜 내분의 여파로 원하던 김지훈과의 방어전이 다섯 차례나 연기되면서 세계 챔피언의 꿈을 버리고 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불어나는 빚과 사랑하는 아내와 팬들을 위해 30이란 나이에 다시 한번 링 위에 올라 세계 챔피언의 도전하였으나, 링을 떠나 있었던 2년여의 시간과 경기 감각, 흐른 세월의 나이는 그를 세계챔피언으로 이끌어 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재광은 포기하지 않았으며, 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복싱은 내 인생의 전부”라는 그는 무등체육관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자신이 이루지 못한 세계챔피언의 꿈을 후배들을 통해 이루려고 다시 한번 도전하고 있습니다.
정재광(전 동양챔피언)은 현재 회기동, 경희대 삼거리에 위치한 곳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정재광복싱클럽"을 운영하며, 못 이룬 세계챔피언이란 꿈을 후배들을 지도하여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사진=정재광 복싱클럽 제공 |
권투의 대중화를 고민하며, 복싱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쉽고, 재미있게 복싱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음악과 전통복싱을 접목시켜 "뮤직복싱"을 운영중이며,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복싱을 전파하는 것에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정재광복싱클럽에서 운영중인 "뮤직복싱"은 스트레이트와 훅, 어퍼컷 등 다양한 팔 동작이나 다양한 스텝을 조합하여, 목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사용하는 유산소 운동이기 때문에 온몸의 군살을 없애주고 탄력 있는 몸매로 가꿔준다. 살빼기 가장 힘든 팔 안쪽과 허
발뒤꿈치를 들고 운동하기 때문에 히프를 올려주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으며 넓지 않은 공간에서 최대한의 운동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체지방 감량이 제일 잘되는 운동 강도인 최대 심박수 60~70%를 유지하며 운동할 수 있어 몸매와 탄력을 원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다이어트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