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생각해보자. 이 세상 사람들이 단 한가지 옷, 예를 들어 파란 정장만 입는다면 어떨까. 옷을 고르는 불편함이야 사라지겠지만, 윗집 아랫집 이웃 사촌에 사돈 팔촌까지 남녀 모두 같은 모양 같은 크기 정장을 입고 다녀도 좋을까. 스키장을 갈때나 골프장을 갈때는 물론, 거리에도 모두들 똑같이 파란 옷을 입은 사람만 득실득실한 세상.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을까.
이 끔찍하게 단조로운 한국 자동차 시장에 한줄기 빛이 될 만한 차가 나왔다. 바로 쉐보레 트랙스다.
쉐보레 트랙스는 그 전까지 한국에서 나온 적이 없는 독특한 자동차다. SUV의 형태를 띄고 있는 소형 자동차. 유럽이나 일본에선 간혹 이같은 구성이 눈에 띄지만 우리는 그동안 왜 이런 차를 안내놨나 싶을 정도로 반갑다.
외관을 보면 작고 아담하다. 배기량도 1.4리터에 불과해 SUV를 끌고 갈 수 있을지 갸우뚱한다. 하지만 차를 몰아보면 생각이 바뀐다.
우선 실내공간. 운전석 머리공간이 꽤 넓고 뒷좌석 무릎공간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있으나 마나일 줄 알았던 트렁크도 그런대로 쓸만하다. 좌우 공간은 몰라도 앞뒤 공간은 이 정도면 괜찮은 차다.
다음은 출력.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어도 힘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한 기자는 "단숨에 시속 180km의 속도까지 뽑았다"고 자랑하기도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고 시속 130km까지 달리는데 그리 스트레스 받지 않는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적어도 시내에서 주행하면서 답답하다 하는 일은 없겠다.
6단 자동기어가 장착됐는데 연비를 높이기 위해선지 기어를 자꾸만 높은 단으로 올려버려 재미를 좀 감소시킨다. 달리는 재미를 위해서라면 기어노브에 있는 메뉴얼 스위치를 직접 조작하는게 낫다.
다음은 주행성능. 주행성능은 이 차에서 가장 큰 장점이다. SUV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시트포지션이 꽤 높고 시야가 넓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행성능은 소형차처럼 핸들이 예민하고 민첩한데다 높이를 감안하면 코너에서의 기울어짐도 극소화 돼 있다.
이같은 소형차에 SUV를 입히는 구성은 피아트에서 주로 하던 것인데 피아트 팬더(Fiat Panda)가 바로 이런 형태로 '유럽 올해의 차'가 되기도 하는 등 인기를 끌기도 했다. 또 최근의 미니 컨트리맨이나 피아트 500L도 4륜구동 옵션을 지닌 미니 SUV라 할 수 있다.
우선 4륜구동 옵션과 디젤모델이 제공되지 않는다. 안타까운건 제품도 있고, 기술적으로도 내놓을 수도 있는데도 '한국시장에선 안팔릴것'이란 지레짐작으로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당초 이 차는 '미니 컨트리맨'처럼 작은 SUV였지만, 이 두가지가 제외되면서 SUV라고 자처하기 낯간지럽게 됐다. "원래 4륜구동인데 내가 사정상 2륜구동을 선택했다"면 몰라도 "처음부터 2륜구동 밖에 없다"면 누가 이 차를 SUV라고 이해 해줄 수 있을까. 얼마나 팔리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차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옵션인데 이걸 뺀다는건 도무지 말이 안된다. 당초 이 차의 경쟁모델은 현대 투싼이나 기아 스포티지까지 노릴 수 있었는데, 이 옵션의 부재로 경쟁모델은 쏘울이나 i30로 내려오게 된 셈이다.
결론을 말할 때가 됐다. 사실 실내외를 면밀하게 관찰해보면 이 차에 쓰인 소재는 그리 비싼 것들이 아닌데도 꽤 멋진 디자인을 해냈다. 척박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과감한 제품을 설계해 우수한 패키징으로 내놓다니 한국GM 임직원들 모두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본사에서 지시했을 선택사양이나 가격 결정은 정말 난해하다. 우리가 만들어 해외에 내다 파는 옵션대로 한국에 팔게 해달라는게 그리 들어주기 힘든 것이었을까. GM이 한국에 차를 팔 생각이 없다는게 이제는 분명해 보인다.
김한용 기자 /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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