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 "이 정도 개천은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차를 믿고 밟으세요"
말이 쉽지, 폭설로 코앞도 안보이는데 보닛까지 빠져들 것 같은 물을 지나라고 하니 영 불안했다. 굵은 얼음까지 깨부수며 지나야 했다. 느낌은 마치 강을 지나는 것 같아 중간에 엔진이 서버리면 어쩌나 우려도 됐다.
폭설이 내려 하얀 눈천지로 변한 강원도 삼양목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G350 블루텍 모델을 시승했다.
우선 메르세데스-벤츠에서 가장 오랫동안 만들어진 차가 바로 G클래스로 1979년부터 지금까지 디자인이 크게 바뀌지 않고 계속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가장 비싼차도 G65 AMG로 물경 3억이 훌쩍 넘어 S65 AMG나 슈퍼카 SLS AMG보다 비싸다. 어느면에서건 최고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사실상 벤츠의 상징이라 할만한 G클래스가 이제야 국내 출시된 이유가 오히려 궁금 할 정도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이 차는 1억이 넘는 G350에 비해 2억이 넘는 G63 AMG등 2억 넘는 고가 모델 판매가 더 많다는 점이다. 막대한 개발비를 투입하지 않고도 계속 인기를 끌고 있는데다, 비싼 모델일수록 더 잘팔리고 있으니 회사 입장에선 이런 효자차종이 또 없겠다.
◆ G클래스는 결코 죽지 않는다
사실 G클래스는 원래 70년대 자동차 회사 오스트로다임러와 무기회사 슈타이어, 자동차회사 푸후가 합작해 만든 회사인 슈타이어-다임러-푸후(Styer-Daimler-Puch)社에서 세계 최고의 군용 차량을 목표로 개발한 차량이다.
30년이라는 긴 세월은 G클래스를 만드는 이 회사를 무너뜨렸고, 캐나다의 마그나社가 인수해 지금은 다임러와 관계 없는 마그나-슈타이어社가 됐다. 하지만 세월도 매력적인 G클래스의 생명은 끊지 못했다. 이 업체는 아직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외주 생산을 받아 G클래스를 생산하고 있다.
더구나 당초 군용으로 만들어진 이 차가, 냉전이 끝나고 장벽이 무너지면서 아이러니 하게도 벤츠 최고의 럭셔리 차로 바뀌는 운명이 됐다.
이날 행사에는 G63 AMG도 전시됐는데 이 차는 가솔린 V8 5.5리터 트윈터보를 장착해 544마력을 낸다. 포르쉐 카이엔 터보(500마력)은 물론 BMW X5M이나 X6M(555마력)까지 멀찌감치 따돌릴만한 성능이다.
우선 문을 여는 방식부터 시작해 모든게 색다르다. 일반적인 승용차처럼 손잡이를 당기는게 아니라 엄지손가락으로 동그란 버튼을 세게 누르면서 손잡이를 당기는 옛방식 그대로다. 닫을 때도 사뿐하게 닫히는 식이 아니라, "철커덕"하는 소리를 내면서 닫히는 철제문과 같은 방식이다. 더구나 문의 안쪽을 보면 걸쇠 부품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이물질이 쉽게 끼지 않을 뿐더러 위급시 수리도 쉽게 만들어져 있다.
이 차에 들어 앉으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디퍼런셜 락' 버튼이다. 보통 다른 차라면 내비게이션이 있어야 할만한 곳.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가장 고급스럽게 만들어져 있다. 주행중에도 기어가 N인 상태에서 이 버튼들을 누르면 후륜 좌우, 앞뒤의 센터 디퍼런셜은 물론 전륜 좌우의 디퍼런셜도 잠글 수 있다. 전륜 디퍼런셜을 잠글 수 있는 양산차는 세계에서 이 차가 유일하다. 이 버튼이 바로 이 차의 성격을 웅변하는 듯 하다.
디퍼런셜을 잠그지 않더라도 G클래스는 4ETS라는 브레이크를 이용한 트랙션 시스템을 통해 풀타임 4륜 구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 토크가 더 필요하면 로기어를 이용해 바퀴로 전달되는 토크를 더 늘릴 수도 있다.
실제로 어느정도나 되는지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이 차는 무려 60도의 언덕을 오를 수 있고, 40도로 기울어진 도로를 달려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60cm의 물에 들어가도 달릴 수 있다. 이보다 훨씬 깊은 1미터 물속에 들어가도 침수되지 않도록 설계 돼 있지만 그 정도 깊이에선 차가 배처럼 물에 둥둥 뜨기 때문에 바퀴가 바닥에 닿지 않아 전진이 불가능한게 문제라고 한다.
서스펜션도 독특하게 전후륜모두 리지드액슬(Rigid axle) 방식이다. 이 방식은 양측 바퀴의 서스펜션이 직접 연결 돼 있어 한쪽 바퀴가 기울어지면 반대편 바퀴도 영향을 받게 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오프로드에선 이 방식이 더 바람직하다. 특히 이 차에선 차체 하부의 공간을 적게 사용해 지상고가 넉넉해지는 장점도 크다.
차체는 외부까지 모두 강철판이다. 오프로드를 주행해보니 강성도 어마어마하지만, 보닛에 사람 몇명이 올라가도 전혀 찌그러지지 않으니 이걸 과연 자동차라 불러도 좋을까 싶다. 이 차는 '전차'라거나 '갤랑데바겐'(G클래스의 80년대 이름)이라 불러야 제맛일 듯 하다.
◆ '갤랑데바겐'에 놀라운 발전을 더하다
직각으로 깎아지른 듯한 전면 유리나 전반적 디자인은 구시대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지만 현대적인 맛을 가미하는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우선 실내 디자인을 보면 매우 고급스러워 과거의 G클래스를 떠올리기 어렵다. 리모컨이 편리하게 자리잡은 핸들 느낌이나 가죽시트의 질감도 무척 고급스럽고 편안하다. 공기를 이용해 곳곳이 부풀어 올라 몸에 딱 맞춰지는 시트도 유용하다. 외관에서는 작은 변경이 있었을 뿐이지만, 이 차에서 냉전시대의 유물이라는 느낌은 더 이상 찾기 힘들다. 특히 AMG 모델의 에어인테이크나 헤드 라이트에 LED주간주행등이 무장하고 있는 모습에서 오히려 미래적 이미지를 풍긴다.
숲속에서는 물론 고속도로에서도 존재감이 대단할 것 같다. 하지만 이 차를 일찌감치 시승해 본 기자들의 말에 따르면 출력이 강한 G63 AMG도 시속 200km 가량의 속도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조향에 직결감이 적어 고속에서 차선을 변경하는게 쉽지 않고, 적응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차체가 높은 것에 비해 실내 공간이 그리 넓은 편이 아니다. 공간 넓히는 것이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겠지만 이 차 특유의 감성과 주행성능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 유지한 듯 했다. 성능이나 디자인도 매력적이지만 이 차에서 그보다 더 큰 가치는 바로 전통이기 때문이다.
김한용 기자 /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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