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도 수입차를 외치던 기아차 K9이 오히려 현대차 에쿠스의 판매량을 뺏어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과 경쟁하겠다던 기세가 초라해졌다.
지난 5월 출시된 K9의 판매량은 첫 달 1500대, 다음달 1703대로 목표치인 월 2000대 수준에 근접하는 듯 했다. 그러나 7월 1400대를 시작으로 하향세를 보이더니 지난달에는 510대까지 떨어졌다. 6월 판매량에 비해 무려 70% 이상 감소한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 에쿠스 판매량도 반토막이 났다. 에쿠스는 지난 1~5월까지 월 1000대 수준의 판매를 유지했지만 K9 출시 이후 점차 감소했다. K9의 판매가 줄어든 7월부터도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고, 지난달에는 546대 판매되며 지난 2월에 비해 46% 가량 줄어든 실적을 기록했다.
결국, K9이 수입차 고급차 시장을 뺏어온 것이 아니라 에쿠스가 가지고 있던 국산 대형차 시장을 빼앗는 상황이 됐다. 지난 10월 K9과 에쿠스의 판매량을 더하면 1056대로, K9 출시 전 에쿠스의 판매량과 비슷한 수치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K9이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등 고급 수입세단을 목표한 전략이 실패했고, 이후 에쿠스와 카니발리제이션(서로 잡아먹다)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지난 2월, 제네시스와 에쿠스의 판매량은 총 2555대였는데, 이는 K9이 가세한 지난 10월(2448대)보다도 많다”면서 “제네시스는 K9 출시 이후 잠시 주춤하던 판매량을 회복했기 때문에, 결국 월 1000대 수준이었던 에쿠스의 시장을 K9이 뺏어먹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K9 판매 부진에 대해 성능이나 편의 사양 등 제품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국산차 브랜드라는 한계에서 무리하게 수입차와 대결구도를 유도한 마케팅 전략의 실패로 분석했다.
한 전문가는 “K9을 직접 타보니 세련된 디자인이나 가속감 등은 수입차와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고급 세단, 특히 수입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제품력 보다는 브랜드 이미지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데, 기아차는 K9의 수준을 시장 평가에 비해 너무 높게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한-EU FTA로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유럽산 수입차의 가격이 점차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K9이 최첨단 사양을 근거로 가격을 높게 설정한 것도 주요 원인”이라며 “이는 경쟁 수입차들의 판매량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해진다”고 말했다.
실재, K9과 비슷한 가격대의 BMW 5시리즈나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는 K9 출시 이후 오히려 판매가 증가했다. 또, 기아차가 K9의 경쟁상대로 꼽은 7시리즈와 S클래스 역시 K9에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한 판매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출시된 신형 7시리즈는 이미 올해 판매 물량이 모두 다 팔렸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모았다.
전승용 기자 / car@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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