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임산부들은 내국인에 비해 진료시간이 2배 이상 걸리지만 일단 한번 신뢰관계가 형성되면 거의 100% 신뢰하는 경향이 있어요. 신뢰를 얼마만큼 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 셈이죠.”
최규연 순천향의대 교수(산부인과)는 국내에서 출산을 원하거나 출산할 수밖에 없는 외국인 산모들은 국내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 문화적 차이로 인해 병원 이용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신뢰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고위험임신, 태아기형 등 모성태아의학이 전문 분야인 최 교수가 외국인 산모들에게 명성을 쌓게 된 것은 지난 2002년부터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한남동에 위치한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에 근무하면서 부터이다.
병원 인근에 대사관이나 외국인 거주지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국인 산모들이 몰리고 이것이 입소문을 타면서 커뮤니티를 통해서 이제는 일부러 멀리서도 찾아오는 산모들도 꽤 늘고 있다.
그 간 최 교수가 받아본 외국인 신생아만 수백 명에 달한다. 그만큼 쌓아온 노하우도 많아 외국인 산모들에게 많은 지지와 신뢰를 얻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 산모들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 병원에서 입원을 하면 반드시 금식을 해야 하고, 팔에 링거를 꼽고 있어야 하며, 외부 활동도 철저하게 금지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병원을 찾기 전부터 잔뜩 겁을 먹는 경우가 많죠.”
출산 경험은 여성들에게 가장 설레고도 힘든 시간으로 특히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이뤄지는 경우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자국과 다른 문화, 의료 시스템에서 비롯된 부적응과 오해는 산모들에게 또 다른 어려움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외국인 산모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과 환자 간의 신뢰 관계로 산모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귀 기울여 듣고, 자세히 설명한다면 신뢰 형성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 최 교수의 결론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연출산을 선호하는 외국인 산모들을 위해서 산모와 태아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원하는 형태의 진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되도록 의학적 처치를 최소화하고 산모가 원하는 식단의 식사를 허용하며 진통 중 침상에만 있지 않고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해줘야 한다.
하지만 자연출산이 출산 후 회복이 빠르고,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부담이 적다고 해서 전문의의 진료와 도움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최 교수는 “사실 환자와 의사 간의 신뢰감 형성은 내외국인을 떠나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신뢰가 형성되면 환자들은 의료진이 제시하는 의학적 조치에 수긍하고 대부분 동의하게 된다”며 “자연출산이 좋다고 하지만 출산 경험도 없는 여성이 집에서 스스로 출산을 할 경우에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최 교수는 외국인 산모들의 자연출산을 돕기 위해 산모에게 정신적·신체적 지지자가 돼주는 ‘듈라(Doula)’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도 다소 생소한 비의료인인 ‘듈라’들은 외국에서는 산모의 출산을 지지해주는 지지자로서 많은
국내에서는 아직은 초창기이지만 몇몇 외국인 듈라들을 중심으로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최 교수는 지난 7월 국내 최초 듈라인 리사(Lisa Fincaryk)씨 주최로 자연출산을 지지하는 의료진, 관계자들과 듈라에 대한 이해를 돕는 모임을 가진 바 있다.
한석영 매경헬스 [hansy@mkhealt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