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에 갈때 마다 훌쩍 오른 기름값에 놀라곤 한다. 이게 다 땅 밑에 감춰진 기름을 태우는 엔진을 만든 탓이다. 누가 이런 엔진과 자동차를 만든 것일까. 다양한 자동차 엔진의 역사를 되돌아보도록 하자.
◆ 너도나도 '최초의 자동차'…진짜는 어떤 것?
최근 메르세데스-벤츠의 광고를 보면 칼 벤츠가 최초의 자동차를 만들어 인류에게 선물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초의 자동차'가 무엇인가를 놓고 수많은 이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독일이 자동차를 처음 만들었다는 주장은 어쩌면 다소 과대 평가 돼 있는지도 모른다.
다빈치가 이 설계를 했을때는 미대륙이 처음 발견된 즈음이며, 로마가 멸망하는 시점이었다. 그런 시대에 그는 이미 자동차의 개념과 엔진의 개념까지 만들었다. 더구나 최초의 양수기를 만들었고, 비행기나 낙하산, 헬리콥터 등의 원리를 개발했을 뿐 아니라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까지 그려냈다. 다빈치는 외계인이거나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요즘 '자동차(Automobile)'라면 흔히 내연기관 엔진을 달고 있는 탈 것을 뜻한다. 이 자동차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자동차용 엔진의 발명
벨기에의 에티엔트 르노와르는 1859년 처음으로 2행정 내연기관을 양산화했다. 땅속의 석탄 대신 석유를 동력으로 활용한 역사적 사건이다.
17년이 지난 1876년 니콜라우스 오토는 이를 토대로 효율이 우수한 4행정 가스 내연기관을 처음 실현해냈다. 이 엔진은 당시로선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며 '오토(otto)'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오토의 엔진 특허는 독일 법원에서 특허 무효처분을 받게 돼 이후 누구나 오토의 엔진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오토는 고틀립 다임러와 빌헬름 마이바흐를 조수와 직원으로 두고 있었는데, 이들이 오토와 결별하고 유명한 '다임러 자동차회사'를 열게 된다.
그의 조수였던 고틀립 다임러는 1885년 동료 빌헬름 마이바흐와 함께 보조바퀴가 달린 2륜 탈 것, 요즘 기준으로 보면 오토바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제작했다. 다임러의 작업실은 작은 문을 통해 드나들어야 했는데 이 통로의 폭은 4륜 자동차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좁았기 때문이다.
이듬해 1886년 카를 벤츠는 3륜 휘발유 자동차를 만들게 된다. 다임러 또한 뒤질세라 같은해 4륜 자동차를 내놓으며 이에 맞섰지만 자동차에 대한 특허는 카를 벤츠가 앞서 따내게 됐다. 다임러는 생전에 특허를 비롯해 자존심까지 걸고 벤츠와 끊임없는 싸움을 거듭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다임러와 벤츠는 살아 생전 절대 만나지 않았을 만큼 앙숙이었지만 이들의 사후인 1926년, 두 회사는 다임러-벤츠(현 다임러AG)로 통합됐다.
처음으로 경유와 비슷한 연료를 이용한 것은 1900년의 세계박람회에서의 일이다. 당시 디젤은 땅콩 기름을 이용한 엔진을 선보였다. 말하자면 최초의 디젤엔진은 친환경적인 바이오 디젤을 연료로 한 셈이다.
당시 가솔린 엔진은 일부 호사가들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정도였다면 보다 규모가 크고 고장이 없는 디젤엔진은 순식간에 산업을 뒤흔드는 혁명을 가져왔다. 당시 열차 기관차나 선박, 대형 장비, 발전소 등에 널리 사용되던 증기기관이 빠른 속도로 디젤엔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디젤엔진이 승용차에 사용되는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1970년대에 들어서다. 유럽에서는 최근 50% 가량의 차에 디젤엔진이 장착되고 있으며 이 숫자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를 비롯한 미국 등에서도 주로 대형자동차나 오프로드 자동차 등에 사용됐지만 최근엔 높은 연비와 우수한 성능으로 그 수는 점차 늘고 있다.
증기자동차의 선전자동차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증기 자동차'다. 턱없이 낡은 기술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연기관 엔진이 등장하고도 오랜동안 증기기관이 자동차 역사를 함께 이끌었다. 가솔린 자동차를 처음 만든 칼 벤츠는 자신의 특허를 세계 시장, 특히 미국 시장에까지 진출 시켰다. 지금 같으면 특허를 회피해 차를 제작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는 포괄적인 특허가 허용돼 미국 자동차 회사가 가솔린 엔진을 이용한 자동차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에서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자동차를 계속 발전시켰다. 더구나 증기기관은 당시 기술로는 내연 기관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효율을 갖고 있었으므로, 주행 속도면에서는 오히려 앞섰다.
증기기관이 발전하면서 버스나 승용차에 증기기관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증기기관 자동차는 시속 60km를 넘는 속도로 주행할 수 있었다.
1897년에 스텐리 형제가 ‘스텐리 증기자동차회사’를 차린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있어서다.
최근은 내연기관이 기본이지만, 친환경 엔진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표로 인해 증기자동차와 유사한 외연기관이 차세대 동력원으로 재조명되기도 한다.
◆ 엔진의 발전…누구나 자동차를 살 수 있게
그동안 엔진은 모두 4행정 1기통이었다. 헨리포드는 최초로 2기통 엔진을 만들어냈고 1898년에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를 차렸다. 이 회사는 장차 포드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포드는 최초로 대량생산 방식을 도입해 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던 자동차를 실제 구입이 가능한 수준까지 가격을 끌어내렸다. 포드 모델T는 1500만대를 판매함으로써 베스트셀러가 됐다.
1920년대는 엔진의 배기량을 큰 폭으로 늘려가는게 기술의 과시였다. 더 큰 엔진을 만들 수 있는 브랜드가 기술력을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직렬 6기통 8리터 엔진을 장착한 벤틀리 8리터 모델이 나오는가 하면, 192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로 알려진 부가티 타입 41 르와이얄이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곧이어 대공황으로 인해 이 같은 차들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30년대에는 롤스로이스, 메르세데스-벤츠, 아우토유니온(현재 아우디), 폭스바겐 타입1(딱정벌레차) 등이 등장했다. 엔초페라리에 의해 페라리의 전신인 Auto Avio Construzioni가 만들어진것도 이때다.
이후 세계 자동차 업계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2차 세계대전을 맞이하게 된다.
김한용 기자 /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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