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흔한 부정맥 중 하나인 심방세동 치료법에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고 있다. 내시경을 통해 심장에 직접 접근하는 수술법이 국내 처음 도입돼 부정맥 치료의 새 이정표를 만든 것.
삼성서울병원 온영근(순환기내과)․정동섭(흉부외과) 교수팀은 심방세동 환자에게 ‘양극성 고주파를 이용한 흉강경하 부정맥 수술(내시경적 부정맥 수술, Total Thoracoscopic Ablation, TTA)’을 도입, 현재 5명의 환자에게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내시경적 부정맥 수술은 ▲개흉수술에 비해 흉터가 작고 회복속도가 빠르며 수술 위험도가 현저히 낮은 장점과 ▲내과적 시술에 비해 와파린 복용을 끊을 수 있고 재발률이 낮아 미국과 유럽 등 의료선진국에서 확산되고 있다.
특히 내과적 치료가 어려운 심방변형이 심한 만성 심방세동 환자 또는 기존 치료법이 잘 듣지 않았던 환자나 개흉수술이 불가능한 환자에게도 적용 가능하다는 게 이 치료법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지난 2월 첫 환자로 등록해 수술을 받았던 한모(66, 남)씨는 수술 후 다섯 달이 지난 6월 항응고제 복용을 중단하고 현재 건강을 회복했으며 다른 환자들도 항응고제 복용을 끊을 예정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심방세동 환자를 치료할 경우 약물 투여 또는 심장에 전기적 충격을 주거나 고주파절제술를 통해 정상 박동으로 되돌리는 방법을 택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부정맥이 재발하는 빈도가 여전히 높을뿐더러 혈전이 가장 잘 발생하는 부위인 좌심방이(left atrial auricle)에 대한 치료가 어렵다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게다가 환자들의 가장 큰 불편 중 하나인 와파린과 같은 항응고제를 쉽게 중단할 수 없는데다 흔하지는 않지만 시술 자체가 가진 치명적 합병증(심장 천공, 폐정맥 협착 및 폐쇄, 심방-식도루 등)도 간간히 보고되고 있다.
이론적으로 성공률이 가장 높다고 알려진 개흉 수술도 한계점은 뚜렷했다. 개흉수술의 경우 가슴 중앙을 절개한 후 심장을 정지시킨 상태에서 심폐기(체외순환장치)를 사용해야만 한다. 이 경우 환자부담이 높은 데다 수술 자체가 가진 위험성 탓에 판막수술 등 다른 심장 수술과 병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삼성서울병원 온영근·정동섭 교수팀이 선보인 내시경을 통한 부정맥 수술은 이러한 제약들을 뛰어넘었다. 우선 심폐기 사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게 됐다. 내시경적 부정맥 수술은 일반적인 개흉수술과 달리 내시경 삽입과 수술 도구 사용을 위한 구멍(port) 3곳만을 환자 몸에 뚫게 된다.
이로 인해 심장 외부에서 심폐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내시경적 부정맥 수술의 기본 원리인 양극성 고주파 기구를 심장에 접근시킬 수 있다. 즉 환자의 심장이 뛰고 있는 상태에서 최소한의 침습만으로도 수술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수술 후 흉터 역시 5mm로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아 봉합 없이 반창고만 붙여도 될 정도다. 덕분에 기존 개흉수술이 5시간 이상 걸렸던 것에 반해 내시경적 부정맥 수술은 2시간 정도면 마칠 수 있으며, 수술 후 4일 뒤에는 퇴원할 수 있다.
특히 부정맥 재발 시 혈전이 발생해 환자를 심각한 상태에 빠트릴 수 있는 좌심방이(left atrial auricle)를 함께 절제함으로써 수술 후 재발의 증거가 없으면 항응고제(와파린) 복용을 중단할 수 있다.
내시경적 부정맥 수술은 국내에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일부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시행중이어서 충분한 잠재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치료법 중 하나인 경피적 부정맥 시술의 실패 이후 더 이상 치료법을 찾지 못했던 환자들에게도 비슷한 성적이 외국 학계에 보고된 바 있어 이러한 환자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개흉수술 이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던 만성 심방세동 환자가 늘
정동섭 교수는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내시경적 부정맥 수술 시행 빈도가 점차 늘고 있다”며 “나라마다 5년 정도의 중기 성적도 매우 고무적이어서 국내에서도 장기적으로 전망이 밝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애경 매경헬스 [moon902@mkhealth.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