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는 출력 경쟁에서 한 발짝 물러섰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용구간에서의 토크니까요."
렉스턴W 시승회에서 만난 쌍용차 관계자는 현대차 신형 싼타페를 염두한 듯 이렇게 말했다. 렉스턴W에 앞서 신형 싼타페가 출시됐고, 내달 초에는 기아차 뉴 쏘렌토R이 출시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듯 했다.
최근 출시된 렉스턴W의 제원상 성능 및 편의사양은 현대기아차 경쟁 모델들에 비해 조금 부족해 보인다. 쌍용차 측은 이를 인정하면서도 렉스턴W에는 한국지형에 최적화된 신형 엔진이 장착돼 일상 생활에서의 주행 성능은 오히려 경쟁모델보다 우수하다고 말했다.
렉스턴W가 어떻게 변했는지 경기도 포천의 백운계곡을 다녀오며 시승해봤다.
◆ 뛰어난 도심 주행 성능…부드러우면서 강력해
2015kg에 달하는 렉스턴W의 육중한 차체를 앞에 두니 과연 2.0 리터급 엔진을 달고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경쟁 모델에 비해 무게도 더 무거웠지만 155마력의 출력은 이 차를 움직이기에 조금 모자랄 것 같았다.
그러나 렉스턴W의 초반 주행 성능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느껴진다. 엑셀과 브레이크의 반응이 부드러웠으며 속도감응형 스티어링은 저속에서 가볍게 움직여 조작이 편리했다. 엔진은 중·저속에서 높은 토크를 발휘하도록 세팅돼 여유로운 동력성능을 느끼게 한다. 엔진 소음과 풍절음도 효과적으로 차단돼 정숙성도 우수하다.
변속기는 기존 2.0 모델에 사용하던 6단 변속기 대신 2.7 모델에 사용하던 5단 변속기를 사용했다. 5단 변속기라니, 효율면에서는 조금 아쉽지만 메르세데스-벤츠산 E-Tronic 5단 변속기는 변속 타이밍도 빠르고 충격도 거의 느껴지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기어노브에는 토글시프트가 장착됐다. 처음 봤을 때는 좀 엉성해 보였지만, 사용해보니 손가락으로 까딱까딱하는 재미가 나쁘지 않다.
◆ 거침없는 산길 주행…한국 지형에 강하다
렉스턴W의 강력한 토크는 언덕길을 오를 때 진가가 발휘된다. 백운계곡 인근 급경사가 반복되는 코너 구간을 2000rpm 정도로 거침없이 빠져나간다.
렉스턴W에 장착된 엔진은 코란도C에 탑재된 2.0리터급 엔진을 개선한 것으로 1500~2800rpm 영역에서 최대토크를 발휘하도록 세팅됐다. 이는 일상적인 도심 주행 뿐 아니라 언덕과 내리막길, 굽은 길 등이 많은 국내 지형에 최적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렉스턴W는 싼타페·쏘렌토와 달리 후륜방식을 기본으로 한 파트타임 4륜구동(4H·4L) 모델이기 때문에 코너링 능력에서는 경쟁 모델보다 우수하다. 다만 무게중심이 높고 차체가 크기 때문에 와인딩 시 롤링이 조금 더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는 무리한 조작 시 생기는 현상일 뿐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 뛰어난 고속 주행 안정성…가속감은 아쉬워
고속으로 올라갈수록 출력이 아쉽다. 시속 130km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보니 엔진음에 비해 속도계 바늘은 너무 더디게 올라간다. 추월가속 시에도 원하는 만큼의 가속 성능은 발휘하지 못했다.
기존 1·2세대 렉스턴은 2.7·2.9리터급 고배기량으로 172~186마력의 고출력을 발휘했지만, 2012년형 슈퍼 렉스턴부터는 모두 2.0리터급 엔진이 장착돼 같은 차체에 출력만 약 16% 가량 줄었다. 덕분에 공인 연비는 기존 대비 20% 가량 향상됐지만 고속 주행 능력은 떨어졌다.
그러나 렉스턴W의 고속 주행 안정성은 여전히 뛰어났다. 서스펜션은 조금 부드럽게 세팅돼 울컹거림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프레임바디를 사용한 차체에서는 안정감이 느껴졌으며, 속도감응형 스티어링이 고속에서 묵직하게 움직여 불안하지 않았다.
◆ 육중함 벗어던진 스포티한 외관
6년 만에 페이스리프트 된 렉스턴W의 외관은 기존 모델과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변했다. 차 곳곳에는 쌍용차의 고급 트림을 상징하는 'W' 뱃지가 적용됐다.
렉스턴 W의 외관은 웅장함이 느껴지던 볼륨감 대신 다양한 라인을 과감하게 사용했고, 각종 모서리 부분에 포인트를 줬다. 덕분에 낮고 늘씬해 보인다. 전면 그릴은 얇고 길어졌으며, 헤드램프는 양쪽 끝을 길게 잡아빼 날카로운 인상이다. 안개등 디자인도 변했다.
후면부도 테일램프 디자인을 변화시켰으며 LED를 적용해 스포티한 느낌을 준다. 리어스포일러 디자인도 달라졌다.
◆ 안타까운 실내…"이게 최선입니다"
차에 올라타자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 보이는 넓은 시야가 인상적이다. 최근 출시되는 SUV와 달리 지상고와 시트 포지션이 높았다. 최근 출시되는 SUV들이 세단의 승차감을 위해 지상과와 시트포지션을 낮추는 경향과 달리 정통 SUV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가죽시트의 소재와 질감이 우수해 착좌감도 좋았다.
그러나 렉스턴W의 실내 디자인은 매우 아쉽다. 인터넷에 유독 많은 쌍용차 옹호자들도 지지하기 힘들만한 디자인이다. 전체적으로 기존 모델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클래식함이 느껴지기 보다는 트랜드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계기반은 개선됐다고 하지만 요즘 경쟁 차종들과 비교하면 안타까울 정도. 작은 크기의 LCD 창은 한정적인 정보만을 제공할 뿐이다. 최상급 모델에도 여전히 핸들식 사이드 브레이크가 적용됐으며, 내비게이션 위치도 시트 포지션에 비해 낮아 이용이 불편했다. 다양한 수납 공간이 있지만 각 수납공간의 크기나 위치면에서 실용성은 부족하다.
이에 대해 쌍용차 관계자는 "한정된 예산을 사용하다보니 선택과 집중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동호회 및 렉스턴 오너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그 중 가장 요구가 많았던 스마트키, 파워잭, USB 등 기능적인 부분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 렉스턴W, 신형 싼타페와 뉴 쏘렌토R 사이에 끼다
렉스턴W가 6년만에 야심차게 출시됐지만 경쟁 상대가 만만치 않아 고전이 예상된다. 렉스턴W와 비슷한 시기에 동급 경쟁 모델 중 가장 강력한 상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출시된 현대차 신형 싼타페는 5월 한 달 동안 6000천대 가량 판매됐으며, 내달 초에는 기아차 뉴 쏘렌토R이 새 옷을 입고 출시된다.
렉스턴은 지난 2001년 출시 이후 '대한민국 1%'라는 슬로건으로 국내 고급 SUV 시장을 지배했다. 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쌍용차는 어려운 시절을 겪었고, 렉스턴이 갖고 있던 1%의 이미지도 희미해졌다. 과연 렉스턴W가 강력한 경쟁 모델들 사이에서 쌍용차 기사회생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전승용 기자 / car@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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