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들이 들고 다닌다는 '샤넬백' 가격이 더 올라 무려 740만원에 달한다는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가격이 너무 올랐지만 여성들은 핸드백 회사에 항의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제품을 구입하고 있다고 했다.
아이패드도 못넣을 백이 뭐 그리 비싼가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궁금해졌다. 가만보니 브랜드 백에는 모던함과 재력을 한번에 뽐낼 수 있다는 역사적, 전통적 배경이 깔려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그 '폭력적'인 가격정책을 수용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다이아몬드가 아무리 비싸져도 구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샤넬'이라는 브랜드 또한 굳건하게 백여년간 그 위치를 지켜왔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TV에 나오는 고려시대 도자기 마냥, 확고한 가치로 여기게 되고 그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그걸 구입한다는 것이다.
오늘 새로 만들어진 브랜드가 제 아무리 최고급 재료와 최고의 장인을 동원해 세계 최고 핸드백을 만든다고 해도 절대로 샤넬과 같은 가격을 매길 수 없는건 바로 이 확고한 역사와 전통이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도 마찬가지다. 벤틀리는 빛나는 역사를 등에 업고 있는 회사다. 1919년부터 최고의 전투기 엔진과 초호화 차만 만들어온 벤틀리는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우리돈 3억원~5억원이 넘는 차를 만들어 온 초호화 브랜드의 대명사 격이다.
◆ 최고의 차, 최고의 변화
그러나 자동차는 핸드백처럼 전통만으로 유지될 수는 없는 제품이다. 최고의 차라면 모름지기 그 시대 최고의 성능을 갖춰야 한다. 아무리 초호화 실내를 갖췄다고 해도 2000만원짜리 현대차가 휭 하니 앞질러 버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정도 성능이라면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최고의 성능을 갖추지 못하는 브랜드는 도태되기 마련이다.
그런면에서 벤틀리는 최고의 파트너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바로 폭스바겐 그룹. 폭스바겐은 페이톤이라는 걸출한 대형차를 만들어내면서 엔지니어링의 정점에 올라섰고, 1998년 벤틀리를 인수하면서 럭셔리라는 면에서도 최고점에 이르렀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브랜드 마이바흐가 단종되고, 한때 벤틀리의 모회사였던 롤스로이스 또한 어려움을 겪는 판국에 벤틀리는 점차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게 바로 폭스바겐 그룹의 힘이다.
이전 벤틀리가 일부 극소수 소비자들만을 위한 메이커였다면 부자라면 폭스바겐이 인수한 이후 벤틀리는 최고 수준의 부자라면 누구나 한대 쯤 소유해야만하는 브랜드로 거듭나게 됐다. 판매대수도 연간 불과 몇백대 수준에서, 최근 연간 7000대~1만대까지 판매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 변화와 혁신의 조화
구형 콘티넨탈GT도 아직 낯선 느낌인데, 벤틀리는 이 차의 디자인을 더 발전 시켰다. 말하자면 신형 콘티넨탈 GT는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정점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얼핏 보면 기존 모델과 비슷한 면이 눈에 띄고 누가봐도 벤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분명히 이전에 비해 놀랍게 아름다워졌다. 변화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통적인 메이커의 숙명을 유지하면서도 혁신을 꼼꼼하게 더해 이같은 모습을 만든 듯 하다.
이번 콘티넨탈GT에는 5억이 넘는 뮬산에 사용되던 슈퍼포밍(Super Forming) 기술이 사용된다. 이는 항공기 차체를 만드는 기술로, 범퍼부터 헤드램프와 휀더에 이르는 넓은 면을 단 한개의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든 기술이다.
이로 인해 콘티넨탈GT는 앞 범퍼가 미세하게 긁히기라도 하면 측면 전체를 교체해야 하겠지만, 이음새가 전혀 없는 앞부분은 다른 브랜드가 따라 하려 해도 할 수 없는 독특한 덩어리 느낌(Solid feel)을 만들어준다.
여기 동그랗게 빛나는 LED 주간 램프는 사진에선 잘 나타나지 않지만, 실제로 보면 마치 다이아몬드가 빙둘러진 웨딩 반지를 보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보석 장식품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이 업체 관계자의 설명이다.
더구나 공조장치 버튼들의 보이지 않는 뒷면에도 세밀한 세공이 이뤄졌는데, 이 세공은 거울같은 우드트림에 비춰지는 것을 감안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정도면 혹시 손때가 묻을까 주저하게 될 정도다.
◆ 놀라운 주행감각
세밀한 세공이 이뤄져 있는 호사스런 기어노브를 당긴 후 가속페달을 밟아보면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클래식한 외관과 달리 페달의 세팅이 가속 위주로 돼 있어서 약간만 밟아도 차가 튀어나가기 때문이다.
폭스바겐 그룹에서 개발한 6리터급 575마력의 W12 바이터보 엔진은 처음엔 A8과 페이톤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벤틀리에 장착됨으로써 가장 어울리는 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이 든다. 뮬산 등 벤틀리 고유 플랫폼에 장착되는 V8 엔진에 비해선 출력이 높고 토크는 다소 낮다.
트랙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차를 몰아붙여본다. 이번 콘티넨탈GT는 전륜과 후륜에 40:60의 출력을 배분해 운전의 재미를 더했다. 가속페달을 조금씩 과하게 밟아주면 후륜이 슬라이드를 일으키면서 코너를 더욱 예리하게 돌아나간다. 운전자가 언더스티어와 오버스티어를 자유롭게 일으킬 수 있도록 세팅된 것이 인상적이다.
이 차에 장착된 21인치 초대형 타이어는 편평비가 35로 스포츠카에나 어울릴법하지만, 서스펜션과 절묘하게 조화돼 코너링을 확고하게 이뤄내면서도 승객이 잔 충격을 느끼지 않도록 세팅돼 있다.
서스펜션은 센터페시아의 콘솔을 통해 4단계로 감쇄력 조절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부분이 버튼이 아니라 화면을 터치하게 돼 있는 부분이 아쉽다. 페이톤을 연상케 하는 이런 기능은 차라리 없는게 나을 뻔 했다.
웨더스트립(고무 밀폐부품)과 유리는 모두 2중으로 차폐돼 외부의 소음이 실내로 유입되는 것을 놀라운 수준까지 낮췄다.
W12엔진의 정숙성과 진동억제는 극도로 우수하게 느껴지지만 가속페달을 깊숙히 밟으면 중후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를 끌어낸다. 차량 밖에서 들으면 더욱 과격한 사운드가 된다.
주행감각은 매끄러우면서도 한층 타이트해졌다. 하지만 경량 스포츠카에서 보는 인마일체의 느낌까지는 아니고, 전형적인 GT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 거대한 차체가 운전자 의도대로 따라오는 느낌은 신기할 정도다. 속도를 높일수록 느껴지는 기분좋은 이질감도 독특하다. 덩치에 연상되는 미끄러짐은 좀체 나타나지 않고 압도적인 수준의 접지력을 보여준다. 잘 만들어진 풀타임 사륜구동 시스템과 서스펜션 덕분에 전자자세제어장치(ESP)를 끄고도 중심을 잃도록 만드는게 오히려 어렵다.
이 속도에서 괜찮을까 싶은 코너에서도 브레이크를 밟는 대신 가속페달을 더 밟으면서 진행하는 것이 이 차의 바른 운전법인듯 했다. 가속페달을 밟을수록 코너를 잘 돌아나가는데다, 직선 도로에서도 시속 200km를 넘을때의 직진 안정감이나 안심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 발군이다.
최근에는 국내에도 수많은 GT카(스포츠성을 추구하면서도 편안한 고급차)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최고의 GT카를 꼽는다면 절대로 벤틀리 콘티넨탈GT를 빼놓을 수 없다.
◆ 주요 제원
전체 길이×전체 폭×전체 높이=4806mm×1944mm×1404mm
휠 베이스=2746mm
차량 중량=2320kg
구동 방식=AWD
엔진=6.0리터 W12기통 트윈터보
최고 출력=575마력/6000rpm
최대 토크=71.4kg-m/1700rpm
트랜스미션=6속AT
가격:2억9200만원
김한용 기자 / whynot@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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