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의 대형세단 페이톤 3.0 TDI를 시승했다. 이전에 시승했던 4.2리터 가솔린 모델과는 성격이 크게 달랐다. 가솔린 모델은 높은 배기량에서 나오는 출력으로 거친 맛도 느껴졌지만 디젤 모델은 차분하고 부드러웠다. 주행할 때 느낌뿐만 아니라 정차 시 소음이나 진동도 느끼기 힘든 수준이었고 가속할 때 엔진 소리에서도 디젤 차량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정숙성을 보였다.
◆ 부드러운 승차감…“가솔린 아닙니다”
시동을 걸어도 가속페달을 밟아도 이 차가 디젤 차량이라고 알아채기 쉽지 않다. 운전자야 계기판 RPM게이지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탑승객은 전혀 눈치를 챌 수 없을 수준이다. 최근 유럽 메이커들의 디젤 차량을 보면 진동이나 소음을 잡아내는 기술은 매우 우수하다.
성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속도를 내기 위해서 가속페달을 밟으면 원하는 속도만큼 어렵지 않게 도달한다. 궁수가 부드럽게 활시위를 당기듯 가솔페달을 지그시 밟으면 계기판의 바늘이 시계 방향으로 움직인다. 2톤이 넘는 덩치여서 그런지 한번 탄력이 붙으면 그 뒤는 어렵지 않게 속도가 올라간다. 이 과정에서 흔들림이나 풍절음 또한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묵직하게 앞으로 나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기어를 S모드로 바꾸고 서스펜션을 스포츠모드로 조작한 다음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는다. 당긴 활시위를 놓자 화살이 튀어나가듯 차량이 쏜살같이 앞으로 나간다. 페이톤 3.0 TDI는 240마력의 최고출력 51.0kg·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최대토크가 낮은 엔진회전수에서 발휘되기 때문에 RPM를 크게 높이는 일이 많지 않다. 이는 효율성 측면에도 영향을 주고 우수한 승차감과 부드러움을 갖게 한다.
◆ 강직한 앞모습, 단아함이 묻어나는 뒷모습
골프나 제타가 야무진 모습이라면 페이톤은 중후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리고 LED 주간주행등을 통해서 강인한 모습도 느껴진다. 위풍당당하다는 표현이 잘 들어맞는다.
페이톤의 실내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다. 센터페시아 구성이나 내장재, 편의사양 등 동급의 수입차는 물론 국산차에 비해서도 특출한 것이 없다.
내비게이션의 위치는 주행에 방해가 될 정도다. 전방과 함께 시야에 들어오지 못해서 자칫 내비게이션을 살피다간 교통흐름을 놓칠 우려도 있다. 차라리 내비게이션이 빠지는 것이 외적으로나 안전성에 보탬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고급세단라고 하기엔 뒷좌석 편의사양이 부족하다. 뒷좌석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수동으로 창문 가리개를 올리거나 열선시트를 작동시키는 것뿐이다. 적어도 오디오나 공조장치 조작이 가능하다면 좋겠다.
페이톤의 전차종은 사륜구동 방식이다. 평상시 앞뒤 50:50의 비율로 구동력이 발휘된다. 또 상황에 따라 앞뒤 구동력을 최대 80:20, 20:80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페이톤으로 코너링을 할 때 정확성은 상당히 좋았다. 민첩한 움직임은 아니었으나 머릿속으로 그리는 궤도로 정확히 움직였다. 시승했던 차량의 앞 타이어가 수명을 거의 다한 상태였기 때문에 고속에서는 살짝 미끄러지는 모습도 있었지만 그것조차 불안한 모습은 아니었다.
간혹 차체나 오버행이 긴 대형세단은 언덕을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 바닥이 긁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페이톤은 차체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어 험로를 무사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
페이톤 3.0 TDI는 가솔린 모델에 비해 몇 가지 옵션이 빠진 탓인지 가격이 크게 낮아졌다. 판매가격은 9130만원이다.
[폭스바겐 페이톤 3.0 TDI]
외관 = 7점 (은근한 매력이 있다)
실내 = 7점 (실내 공간은 좋지만 보수적인 느낌은 아쉽다)
성능 = 8점 (엔진, 변속기, 차체 등의 밸런스가 우수하다)
승차감 = 8점 (뒷좌석에 앉으면 디젤차인지 알아차리기 힘들다)
가격 대비 가치 = 6점 (가격에 비해 편의사양이 부족한 것은 아쉽다)
김상영 기자 / young@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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