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과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그린 ‘하얼빈’이 개봉 이틀째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천만 영화 ‘아바타: 물의 길’보다 빠르게 박스오피스 1위를 경신했다(2025년 1월 6일 기준 누적관객수 367만 명). ‘서울의 봄’ 제작사와 ‘남산의 부장들’·‘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 현빈·박정민·조우진·이동욱 등 톱 배우들이 만났다.
[※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CJ ENM) |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안중근(현빈)이 이끄는 독립군들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둔다.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전쟁포로인 일본인들을 풀어주지만, 이후 일본군들의 기습 공격으로 의군들을 대부분 잃게 되자, 독립군 사이에서는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이후 절치부심한 안중근은 ‘늙은 늑대’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나서고, 밀정을 통해 작전 내용을 입수한 일본군들의 추격도 시작된다.
2015년 대한민국 정계, 검찰, 언론의 어두운 현실을 드러냈던 ‘내부자들’, 1979년 대통령 암살사건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을 만든 ‘시대물의 장인’ 우민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하얼빈 의거 전, 안중근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던 독립군 내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일본군의 추격 속에서 서로를 의지할 것인지 의심할 것인지 끊임없이 갈등하는 숨막히는 첩보전을 신파에 기대지 않고 연출해냈다.
|
↑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CJ ENM) |
영화 ‘공조’ 시리즈, ‘꾼’, ‘협상’,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등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배우 현빈이 자신의 커리어 중 가장 강렬한 색을 지닌 캐릭터,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역할을 맡았다. 외로움과 결단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섬세한 감정 연기뿐 아니라, 다양한 액션까지 함께 보여준다. 배우 이동욱이 대한의군 좌영 이창섭 역을 맡아, 안중근과 대립하지만 신념은 같았던 독립군 캐릭터를 연기한다. 배우 박정민은 대장 안중근의 결정을 늘 지지하는 충직한 우직한 독립군 우덕순 역으로 영화의 무거움을 조금씩 상쇄시킨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으로 잘 알려진 일본의 배우 릴리 프랭키가 이토 히로부미 역할을 맡아 한국에 대해 지닌 증오와 그 뒤에 숨은 경외감까지 지닌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소화해낸다. 배우 박훈이 맡은 모리 다쓰오 역할과, 반전을 선사했던 김상현(조우진 분) 캐릭터가 강렬하다. 이동욱이 연기한 이창섭, 전여빈이 연기한 공부인, 조우진이 연기한 김상현은 실제 역사에는 없는 허구의 인물이다.
실제 독립군들이 활동한 중국, 러시아 지역을 가장 리얼하게 그려내기 위해 만주와 지형이 닮은 몽골, 구소련의 건축양식이 남아있는 라트비아에서 촬영했다. 영화는 안중근이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 마무리 역시 강을 건너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냉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거친 분위기가 당시 독립군의 고군분투를 말해주는 듯하다. 치열한 일본군과의 백병전 장면, 중국의 거친 사막을 거쳐 마적 정우성에게 무기를 얻으러 가는 장면에서의 뛰어난 미장센 역시 영화의 백미. 의거 후 안중근이 “꼬레아우라!”라고 외치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자유를 뺏긴 당시, ‘불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독립의군들에 대한 이야기가 현 시국과 맞물려 남다르게 다가오는 영화다. 러닝타임 113분.
[
글 최재민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CJ ENM]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2호(25.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