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이라는 곳, 지금은 창원이 되어버린 도시. 이곳에는 싱싱한 수산물로 가득한 어시장과 한때 서울 명동에 버금가게 북적였던 창동이라는 번화가가 있다.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을 모아 둔 미술관도 있고 예쁜 벽화가 그려진 골목도 있다. 옛 항구도시 마산으로 떠나는 겨울 여행을 소개한다.
↑ (위로부터)벽화를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한 창동,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에 그려진 벽화,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에서 내려다본 마산 |
↑ (1번째 사진)마산 앞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이 모이는 마산 어시장. (2, 3번째 사진)창동 골목 곳곳에는 작은 공방과 전시장이 들어서 있다. |
- “산복도로의 월세 5만 원짜리 방에서 자취를 했다. 마당에는 커다란 목련 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아래 평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귀퉁이에는 펌프가 있었다. 평상에 앉으면 멀리 바다가 보였는데 그 바다 위에는 커다란 컨테이너선들이 해무에 싸여 신기루처럼 떠 있었다.
- 나는 평상에 앉아 수동 타자기의 글자판을 꾹꾹 누르며 시를 썼다. 시가 써지지 않으면 펌프로 찬물을 받아 마셨다. 봄에는 목련 꽃잎이 평상 위에 낭자했고 여름에는 비릿한 바다 향이 희미하게 밀려들었다.“
마산은 쇠락했지만 어시장은 여전히 건재하다. 마산어시장은 동성동과 남성동, 신포동 일원에 위치하는데, 점포 수만 1만 2,000개에 달한다. 매일 아침이면 마산 앞바다와 통영, 거제 등지에서 갓 잡아온 횟감과 각종 해산물이 몰려들고 시장은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로 붐빈다. 갈치와 고등어, 문어, 아귀 등이 점포마다 가득하다. 떠들썩한 어시장을 걷다 보면 여기는 창원이 아니라 마산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새벽에는 경매도 볼 수 있다.
↑ (위로부터)젊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 놓은 창동, 이선관 시인 기념관 |
창동에는 학문당 서점이 있었다. 지금 사라진 서울의 ‘종로서적’과 같은 역할을 했다. 약속 장소를 잡을 땐 언제나 “학문당 서점 앞”이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으면 친구와 선배, 후배 대여섯 명은 꼭 만났던 것 같다. 거리는 레스토랑과 카페, 최신 유행의 옷 가게가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학문당 앞에서 모이면 우리는 근처 카페로 가 커피를 마셨고, 카페를 나와서는 호프집으로 향했다. 통술집 골목과 아귀찜 거리도 붙어 있었는데, 그 골목은 아저씨들의 구역이었다.
↑ 화려하게 칠해진 골목을 걷는 재미가 있는 창동 |
하지만 90년대 후반 들어 공장이 중국으로 옮겨가기 시작하면서 쇠퇴의 조짐을 보였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신도시인 창원이 인구를 빼앗아 갔고 창동 주변에 들어선 대형백화점도 상권 붕괴를 가속화했다. 시민극장, 강남극장 등 주변의 극장이 문을 닫은 것도 한몫 거들었다. 젊은이들에게 문화와 낭만의 거리였던 창동은 생기를 잃고 아사 직전 상태로 남았다.
↑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 |
좁게 난 골목을 파고들다 보면 하얀 외관이 인상적인 창동아트센터가 있고 맞은편에는 작은 전시관 하나가 있는데, 고(故)이선관(1942~2005) 시인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공간이다. 뇌성마비로 평생 육체적 장애를 안고 살았던 시인은 자신의 장애를 시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첫 시집 ‘기형의 노래’를 시작으로 민주, 생태, 통일을 이야기한 시인은 ‘마산, 그 창동의 허새비’라는 시를 통해 고향 마산과 창동을 죽어서도 영원히 사랑하리라고 노래한다. 그에게 창작의 현장이었던 창동 골목 한편에는 유품을 볼 수 있는 전시관과 소박한 시비가 자리한다.
맛있는 걸 먹고 나면 도시가 달리 보인다
↑ (위) 창동분식의 냄비우동과 김밥. 박고지(여물지 아니한 박의 속을 파내어 말린 반찬)를 넣어 만든 김밥을 이 집만의 비법으로 만든 겨자소스에 찍어 먹는다. (아래) 운지식당의 생선국 |
아니다. 어시장으로 가 생선국을 먹자. 어시장 주변에는 생선국을 잘하는 식당이 많다. 마산, 부산에서는 생선으로 국을 많이 끓여 먹었다. 그만큼 흔했고 또 싱싱했다. 서울 사람들은 갈치국을 제주도 음식으로 알고 있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자주 우리네 식탁에 올랐다. 애호박을 듬성듬성 썰어 넣고 마늘 간만 해서 시원하게 먹었다.
여기까지 와서 우동을 먹으려니 뭔가 아쉬워서 생선국을 먹기로 했다. 갖가지 반찬과 함께 오른 생선국은 매콤했고 감칠맛이 좋았다. 국그릇 속에는 가자미와 장대가 넉넉하게 들어 있었다. 생선국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마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시 풍경이 아무리 스산하고 별로 볼 게 없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그 도시가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여행의 속성이다.
↑ (위)화려하게 칠해진 골목을 걷는 재미가 있는 창동 (아래)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에 그려진 벽화 |
그림 속 할머니는 손녀의 목욕비를 아끼기 위해 손녀 나이를 7살이라고 우기고 있고, 목욕탕 카운터 유리문으로 고개를 내민 주인 아주머니는 인상을 쓰고 있는 모양새다. 당시 목욕탕에서는 8살부터 어른 요금을 받았다. 마을을 올라가는 계단은 모두 세 곳이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어린 시절 학교에서 두드리던 실로폰 같다. 벽화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우울했던 기분이 스르륵 풀리는 것 같다.
↑ (위)행복 버스 벽화 (아래)벽화를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한 창동 |
만화 캐릭터가 볼일을 보고 있는 그림 앞에서는 슬며시 미소가 피어 오른다. 당시 이곳에는 화장실이 집 외부에 따로 있었다. 사람들은 이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어두컴컴한 밤이나 비 오는 날에는 볼일을 보는데 약간의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행복버스’라는 벽화도 있는데, 기다란 분홍색 버스 안에 털보 운전사와 강아지, 아이들이 타고 있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날개 벽화도 인상 깊은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꼭 사진을 찍는 장소이기도 하다.
↑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 입구 |
해 질 무렵이면 담 너머로 구수한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퍼지고 골목길에는 교회 종소리가 내려앉겠지.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을 꼭대기에 다다른다. 멀리 마산항이 내려다보인다. 마을은 마산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 포인트이기도 하다. 세월이 흘러 바닷가에는 어느새 높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섰다. 마을의 다닥다닥 붙은 슬레이트 지붕과 선연하게 비교되는 풍경이다. 삼십 분쯤 골목을 돌아보고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다정하고 따뜻한 동화책 한 권을 펼쳐본 기분이다. 다음에는 아이와 함께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산이 낳은 조각의 거장
↑ 세계적인 거장인 문신의 작품을 모아놓은 문신기념관 |
미술관에 들어서면 마당에 스테인리스와 청동을 만든 대형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의 작품은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를 ‘좌우균제(좌우 균형이 주는 조화)의 추상조각’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보기엔 완벽한 대칭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미세한 불균형이 존재한다. 그는 흑단과 강철, 스테인리스 등을 재료로 작업했는데, 이토록 단단한 재료를 매끈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고집스럽고 치열하게 작업해야만 했을까.
↑ 문신기념관에서 바라본 마산 시내와 바다 |
미술관을 만드는 데 꼬박 14년이 걸렸다. 그는 그는 미술관 개관 1주년을 사흘 앞두고 세상을 떠난다. 미망인은 “사랑하는 고향에 미술관을 바치고 싶다”는 문신의 유지를 받들어 2004년 마산시에 미술관을 무상으로 기증했다. 문신미술관에서 오래 시간을 보냈다. 평면작품도 좋지만 입체작품을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 (왼쪽 첫 번째)문신 동상, (중간)추상적인 미가 돋보이는 문신의 작품 (우)옛 골목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 |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바라보며 이 사실을 새삼 느꼈다. 이번 여행은 추억 방향으로 떠난 여행이었구나. 어시장이며 창동, 산복도로… 누구에게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여행지가 있을 것이다. 겨울에는 그런 여행지로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
“그 시절 마산으로 돌아가겠어요?”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글쎄요” 하고 고개를 갸웃하겠지만, 여행으로라면 가끔 가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여행은 내키지 않을 땐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것이니까.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붉은색이 인상적인 콰이강의 다리 |
시는 오래된 다리의 바닥을 일부 걷어내고 투명 강화유리를 깔아 2017년 3월 ‘저도 콰이강의 다리 스카이워크’로 재탄생시켜 관광 명소로 만들었다.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는 붉은색 교량은 이국적인 느낌으로 가득하다.
↑ 복국거리에서 맛본 복 수육 |
복국 거리도 있다. 광포복집, 동경복집 등이 유명하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0호(24.12.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