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 대지진 후 조선인들을 학살한 사건을 담은 다큐멘터리 ‘1923 간토대학살’.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간토대학살을 고발해 온 한일 양국 추적자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영화로, 희생자 6,661명을 위한 진혼곡이라고 할 수 있다.
※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사진 (주)인디컴, 스튜디오 반)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계엄령을 내리고, 무고한 조선인을 무참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반인류적인 범죄이자 제노사이드인 학살 사건이었지만 101년간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일본. 영화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와 스기오 의원 등 일본 정치인, 시민단체 관계자, 학살 피해자 유족들의 목소리를 따라간다. 대지진 후 중국에서 급파된, 영국 함대 호킨스 기함의 조지 로스 장교가 찍은 사진으로 추정되는 간토 학살 사진도 최초 공개된다.
영화에선 기름을 붓고 산 채로 불태우고, 임부의 배를 가르며 경찰서에 보호하고 있던 조선인을 창살 밖에서 죽창과 칼로 찔러 살해하는 등의 만행이 담겨 있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테러를 저지른다’는 일본 관헌의 조직적인 유언비어로 시작된 학살에도 불구하고, 마을 주민들을 공범으로 만들며 일본 정부가 앞세운 마을 자경단이 황태자의 결혼으로 인해 사면된다. 일왕은 계엄령을 승인해 무려 6,661명에 달하는 조선인을 학살했지만 일본은 명확한 증거를 제시함에도 대학살을 부정하고 있다.
간토대학살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다큐멘터리 영화다. 전반적인 전개는 차분하고 논리적이지만, 스케치와 일지 등 방대한 문헌 기록과 사진, 증언 영상이 일단 압도적이다. 교과서에 기록된 관동대지진에 대해서 여전히 일본 정부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 40년 전부터 조선인 대학살의 실체를 밝히려 노력했던 일본 시민단체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 학살의 잔혹함과 체계적인 진행 등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다는 리뷰가 많다.
↑ (사진 (주)인디컴, 스튜디오 반)
“눈 감아라 내 아내여 내 등에 업혀 고향 가자~ 눈 감아라 내 아기야 고향 집 갈 때까지 눈뜨지 마라” 가수 김현성이 OST 음원에 동참해 실제 강변에서 열린 희생자 추모제에서 꽃상여와 시민단체가 희생자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종이 조형물을 설치한 강 앞에서 ‘귀향 1923’을 부르는 장면은 모든 관객을 울컥하게 만든다. 영화 ‘기생충’ 번역가로도 잘 알려진 달시 파켓이 본편 영자막을 감수를 맡았으며, 배우 김의성이 전체 내레이션을 맡았다. 한일 근대 사진 수집가 정성길 교수가 40년간 전 세계에서 수집해 온 3,500장의 사진들을 보고 간토대학살을 알리기로 마음 먹었다는 김태영 감독이 최규석 감독과 공동 연출을 맡았다.
100년 동안 외면해 온 정부에 맞서 40년 이상 조선인 학살을 추적해 온 일본 시민단체 등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실제 역사가 주는 묵직함이 영화의 힘을 끌고 나간다. 실제로 일본 시민들이 만든 추모비와 추모제 등의 영상이 대거 등장하는데, 그들의 수고에 감사함과 반성까지 느끼게 된다. 러닝타임 116분.
↑ (사진 (주)인디컴, 스튜디오 반)
[글 최재민 사진 (주)인디컴, 스튜디오 반]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47호(24.9.17-24 추석합본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