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주차장 불로 녹은 거울 (MBN) |
지난해 10월 21일 새벽, 서울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0대 남성이 지하에 뒀던 쓰레기에 불을 붙인 겁니다. 연료는 충분했고, 불은 빠르게 번졌습니다. 소방당국 출동해 2시간 30분 만에 불길을 잡았습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지하주차장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취재진이 화재 현장을 다시 가보니 주차장 곳곳이 화염에 불탄 흔적이 있었습니다. 천장 곳곳이 불에 타 망가져 있었고, 주차장 구석에 설치해 둔 볼록 거울도 녹아있었습니다. 불은 주차장의 구석진 곳에서 났지만 피해는 전체로 번진 겁니다.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나면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습니다."
지하에서 발생한 화재의 위험에 대해 전문가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지하엔 창문과 지붕이 없어 불이 나면 그 열기가 고스란히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내부 온도는 급격하게 올라갑니다. 한마디로 아궁이나 오븐이 되는 거죠. 실제로 대구 지하철 화재 당시 내부 온도는 1,200~1,300도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런 고온에선 구조와 진화 작업이 어렵고 인명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위험 요소는 바로 연기입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지하에서 불이 나면 내부에 산소가 충분하지 않다 보니까 불완전 연소로 인해 연기가 훨씬 더 많이 발생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많이 발생한 연기는 외부와 연결 통로가 없는 지하에선 잘 빠져나가지도 않습니다. 유독가스로 가득 차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지하주차장에서 대피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겁니다.
↑ 지하 주차장에 쌓여 있는 쓰레기 (MBN) |
이렇게 위험한 지하층 화재를 막으려면 먼저 지하에 불에 탈 수 있는 물건을 둬선 안 됩니다. 불이 나려면 3가지가 필요합니다. 열과 산소 그리고 연료죠. 연료가 사라지면 당연히 불도 나지 않겠죠.
하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건물은 지하층을 창고나 쓰레기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요. 법적으로도 커다란 제재는 없습니다. 지하에 쓰레기장을 만들면 안 된다는 명확한 규정은 없거든요. 자연스레 지하 공간에 쓰레기 쌓이고, 물건을 보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땔감을 모아 두는 것처럼요.
제가 서울의 아파트를 돌아보니 쓰레기가 잔뜩 쌓은 곳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 아파트는 분리수거장을 넘어서 지하주차장에까지 쓰레기를 성인 남성 키보다 높게 쌓아 뒀습니다. 주차장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건 불법인데도 말이죠.
↑ 쇼핑몰 지하 주차장에 있는 쓰레기 |
한 백화점은 지하 가장 깊숙한 층에 하역장과 함께 직원들의 휴게실이 있었습니다. 2022년 대전 아웃렛 지하주차장 화재도 지하 하역장에 쌓여있던 물건에 불이 붙으면서 시작했고 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숨진 분들이 일하거나 쉬는 지하 공간이 있었죠. 지하에서 머무르는 사람이 많을수록 갑자기 닥친 재앙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 지하에 있는 미화팀 휴게실 |
2022년 대전 아웃렛 화재로 7명이 숨진 이후에도 우리나라의 법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
이제라도 우리는 지상으로 올라와야 할 거 같습니다. 물론 주차장을 비롯한 모든 공간을 지상에 두는 건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적어도 직원들의 휴게실이나 사무실 그리고 창고와 쓰레기장은 지상으로 올리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