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에 갇힌 우크라 부부, 기적 생환..."따라와요" 적힌 '이것'이 구했다

동부 격전지 이지움서 지난해 6월 민간인 남녀 러시아군에 공격
우크라군, 정찰 드론으로 유도해 부인 구조…남편도 기적적 생환

↑ 지난해 6월 이지움 들판에서 공격 받은 우크라 부부의 실제 영상/사진=연합뉴스

미 CNN은 어제(21일) 지난해 6월 한 부부가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하르키우의 소도시 이지움으로 부모님을 구하러 찾아갔다가 러시아 군인들의 총격을 받았던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당시 이지움에서는 러시아의 총공세 속에 피비린내 나는 참상이 이어지면서 주민 4만6천명 중에서 일부가 탈출하지 못한 채 생지옥이나 다름 없는 고립을 겪어야 했습니다.

남편의 부모님을 빼내오려고 직접 운전대를 잡은 부부는 들판을 가로지르다 의도하지 않게 길을 잘못 들었는데, 이것이 곧장 러시아군의 발포로 이어지면서 현장은 순식간에 포화와 파편, 유혈이 뒤엉킨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뒤바뀌었습니다.

실시간으로 현장을 정찰하던 우크라군의 드론 영상에는 이러한 일촉즉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가까스로 좌석에서 빠져나온 부부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곳 없이 공포에 질린 채 울부짖다가 간신히 승용차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이들 부부는 차를 버리고 도망가려고 했지만 30ｍ 거리에 진을 친 러시아 군의 추가 발포가 이어지면서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영상에는 파편에 맞은 남편이 흙바닥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는 모습, 부인이 수건으로 급하게 지혈을 하려는 모습도 담겼습니다.

우크라이나 군은 정찰 드론으로 이를 지켜보면서도 전면적 교전으로 이어질까봐 즉각 개입하지 못했습니다.

↑ 지난해 6월 이지움에서 공격받은 우크라 부부가 드론을 따라 구조되는 실제 영상/사진=연합뉴스

우크라 군은 대신 드론에 '따라오세요'(follow me)라고 적힌 쪽지를 매달았고, 이를 부부 쪽으로 보냈습니다.

부인은 드론을 따라 무사히 아군 진영으로 들어섰지만, 다시 남편을 구하러 돌아가는 게 금지되면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실제로 차량 옆에서 피를 흘리며 도움의 손길만을 기다리던 남편에게는 무자비한 러시아군의 악행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영상에서는 부인이 사라진 뒤 러시아 군인들이 남편에게 다가오더니 그를 구덩이에 던져넣는 장면도 포착됐습니다.

기적적으로 남편은 구덩이에서 하룻밤을 버텼고, 죽을 힘을 다해 30∼40분을 걸어간 끝에 우크라군 진영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뇌, 가슴, 척추에 파편이 박혔던 남편은 현재까지도 치료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CNN은 당시 현장에서 총을 쏜 러시아 군인이 25살 클림 케르자예프이며, 우크라이나 형법에 따라 전쟁 범죄에 해당하는 민간인 살해 미수 혐의로 어제(21일) 기소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드론 영상과 케르자예프 통신 감청 등을 증거로 확보했다고 CNN은 전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는 "우리는 마치 TV에 나오는 드라마인 것처럼 이것을 보고 있다"면서 "이것은 러시아가 민간인을 죽이는 공포 영화"라고 말했습니다.

[김가은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kimke399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