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에서 갓 벗어난 2000년대 초, 한 신용카드의 TV 광고는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부자'였거든요.
갑자기 왜 그랬냐고요? 당시 정부는 경기를 부양한다며 각종 금융 규제를 완화했고,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했습니다.
그 덕에 소득이 없는 대학생은 물론 미성년자까지 카드를 발급받아 소비를 늘렸고, 국민 1명당 넉 장 이상의 신용카드를 갖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 카드가 가계를 좀먹기 시작합니다.
카드 회원 신용도와 카드 이용 실적에 따라 대출을 받는 '신용카드 대출'은 기본, 이 카드의 빚을 저 카드로 갚는 돌려막기까지 유행하죠.
정부가 뒤늦게 대출을 걸어 잠그자 신용불량자가 속출했습니다. 2003년 말 전체 신용불량자의 64.5%가 신용카드 관련자였죠.
그리고 20년이 흐른 올 상반기, 신용카드 대출 잔액은 또 역대 최대가 됐습니다. 4대 카드사의 상반기 '신용카드 대출' 잔액은 25조 원 이상, 신용카드 사용대금 중 일부만 내고 나머지는 다음으로 돌리는 '이월약정'도 4조 8천8백억 원으로 어마어마하게 늘었습니다.
그런데 특징이 있습니다. 늘어난 '신용카드 대출' 잔액 중 75%가 50대 이상, '일부 결제금액 이월약정' 잔액 증가 폭 중 66%가 40대 이하였거든요. 50대 이상은 급전이 필요했고, 40대 이하는 카드값 해결이 힘들었다는 얘깁니다. 카드대출 평균 금리가 13%, 최고 19%나 되지만,
은행 대출은 규제를 해놔 받기 어렵죠,
그러니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한 취약층들은 은행이 아닌, 이자가 무섭게 높은 카드사로 달려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신용카드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이, 두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뿐 아니라 한 나라에 있어서도, 보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이게 독이 됐던 경험을 했으면서도 왜 정부는 또 비슷한 길을 가는 걸까요. 반복되는 재난은 인재라고 하죠,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신용카드 돌려막기 시작됐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