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홈런 신경 안 써요.”
모두가 그의 홈런에 대해 주목하고 있을 때, ‘천재타자’ 이정후(23)는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생애 첫 만루홈런과 연타석 홈런 이후에도 덤덤히 100%를 위해 애쓰고 있는 이정후다.
스스로를 천재라고 믿지 않는 천재는 더 무서워질 수 있다. 올해 이정후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 이정후는 14일 두산전 6회초 1사 1, 3루에서 허경민을 레이저 홈송구로 잡아냈다. 수비 교대를 위해 들어오고 있는 이정후의 얼굴에도 만족감이 보인다. 사진(고척 서울)=김영구 기자 |
당연히 이후에도 이정후의 홈런에 관한 기사와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홈으로 돌아온 14일 고척 두산전을 앞두고 만난 이정후는 “홈런은 신경 안 쓰고 있다. 그것보단 지난 KIA 3연전부터 원했던 밸런스와 타격감이 나와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이정후가 주목한 건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과정에서 나온 홈런이기에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이정후는 “광주 3연전 직전까지 올해 한 번도 만족스러운 밸런스와 타격감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강병식 타격코치님께서 딱 그 고민에 대해 짚어주셨다”면서 “그래서 KIA와 3연전을 앞두고 올해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알다시피 대폭발이었다. 이정후는 “홈런을 만들기 위한 타격을 따로 하지 않는다. 그것보단 내가 원하는 밸런스와 매커니즘으로 치고 싶었는데 올해는 (페이스를 찾는 게)조금 늦었다”고 덧붙이며 “좋아진 부분이 있다면 강병식 코치님 덕분”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 14일 두산전 6회초 1사 1, 3루에서 희생플라이 때 홈으로 들어오던 허경민은 이정후의 정확한 송구에 아웃됐다. 사진은 그 순간이다. 사진(고척 서울)=김영구 기자 |
타격만이 아니다. 모두 이정후의 홈런과 타격에 박수치고 있을 때, 수비력도 계속 해서 좋아지고 있다. 고교 1,2학년 외야수를 봤던 이정후는 학교 사정상 3학년 때 내야수로 전향했다. 그러다 프로에선 다시 외야수를 맡게 됐다. 홍원기 키움 감독의 수비 코치 시절 권유로 이뤄졌다. 그리고 올해 이정후는 훌륭한 주력과 좋은 어깨를 바탕으로, 더 안정적이고 준수한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14일 두산전 6회 초 상대 득점권 상황에서 이정후가 보여준 레이저 송구가 대표적인 장면. 1사 1,3루 상황 이정후는 양석환의 중견수 방면 뜬공을 잡은 이후 지체 없이 홈으로 송구를 연결했다. 그리고 빨랫줄처럼 날아간 공은 이지영의 포수 미트에 원바운드 ‘택배’로 도착했고, 비디오 판독 끝에 주자는 아웃됐다.
3루 주자 허경민이 발이 빠르다는 걸 고려하면 더욱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정후는 9회에도 침착한 슬라이딩 캐치를 선보이는 등 이날 수비로 경기를 ‘캐리’했다. 불과 1경기 장면 만이 아니다. 이정후는 올해 실책을 기록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외야를 지키고 있다.
↑ 14일 두산전 9회에도 이정후는 강승호의 타구를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내며 팀 승리에 공헌했다. 사진(고척 서울)=김영구 기자 |
그렇게 많은 이가 홈런이라는 화려한 꽃에 취해있을 때도, 이정후는 묵묵히 씨를 뿌리고 그 과실을 수확 중이다.
[고척(서울)=김원익 MK스포츠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