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에서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양국은 물론 외국 해커들까지 각자 지지하는 나라의 공격에 가세하면서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중이다. 과거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등에서의 과거 분쟁 사례에서도 민간 해커들이 관여한 적이 있지만, 이번과 같은 대규모 개입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전 세계에서 해커가 몰려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 웹사이트를 공격해 다운시키고, 러시아 언론사 홈페이지에 반전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즈는 이같은 공격이 정부 연계 조직은 물론 민간과 아마추어 해커까지 동참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사이버 전쟁으로 인터넷 혼란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 소속 해커들이 상대국에 보복 공격을 하고 있고, 전선에서도 충돌수위를 높여 민간인 피해 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NYT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해커와 아마추어 해커들은 물론, 외국인 해커들도 자발적으로 자신이 지지하는 국가 편에 가담하면서 사이버전쟁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양국 정부도 텔레그램에 관련 채널을 개설해 해커들에게 구체적인 공격 목표를 설정해주는 등 해커들을 사이버 전쟁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선공은 러시아가 먼저였다. 지난 달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개시되기 전에는 러시아 측 해커들이 우크라이나 정부기관 사이트를 해킹하는 등 공세를 취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측 해커들이 러시아 기관과 기업, 언론사 등을 적극 공격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보안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해커들의 공격은 정부 지원 해커조직들의 공격과 달리 정교하지 않다면서 일부 성공을 거두기도 하지만 러시아군 지상 작전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루카스 올레즈닉 전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사이버전쟁 고문은 "러시아 지상군은 계속 진격하고, 민간인은 고통받고, 건물들은 파괴되고 있다"면서 "사이버 공격은 현실적으로 지상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이버전쟁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정보통신부 장관은 트위터에서 "IT 군대를 창설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임무가 있다"면서 러시아 웹사이트를 다운시키는 방법 등을 안내하는 텔레그램 채널로 유도했다. 현재 구독자가 28만명이 넘는 이 영어 채널은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위치와 신원을 숨기는데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내려받는 방법은 물론, 사이버전쟁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러시아 통신회사나 은행 등 공격 목표도 매일 업데이트해준다.
우크라이나 사이버보안업체인 사이버 유닛 테크놀로지는 공격 목표가 된 러시아 사이트의 보안 취약점을 찾아내는데 10만 달러(약 1억2천만원)의 보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가 공개적으로 해커를 동원하는 움직임은 없으나, 러시아 측 민간 해커들이 자발적으로 우크라이나 공격에 나서고 있다.
텔레그램의 친러시아 채널인 러시아 사이버 프런트는 해커들에게 우크라이나 공공기관 해킹 지시를 내렸고 '콘티'라는 랜섬웨어 조직은 지난 주 러시아 지지를 선언하고 해킹 공격에 대한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군사 분석가들과 사이버보안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민간 주도로 이뤄지는 해킹 공격의 배후에 우크라이나 정부가 있다고 보고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기반 시설 등을 상대로 대규
스위스 제네바 소재 사이버피스 연구소의 클라라 조던 공공정책 책임자는 "상황이 급격히 악화하는 가운데 해커들이 민간인에게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정부를 대신해 하고 있다"며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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