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기가 불거진 이번 달, 미국 투자자들이 앞다퉈 뉴욕 증시 하락장에 베팅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 증시 대표 주가 지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23일(이하 현지시간)을 기준으로 이달 들어 6% 넘게 떨어진 결과 또 다시 기술적 조정 국면에 들어선 상태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중국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나타난 물가 급등세를 잡겠다는 목적으로 기준 금리 인상을 예고한 상황까지 감안할 때 투자자들은 약세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다만 월가 일각에서는 반대 매수에 나설 시점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23일 뉴욕 증시에서 S&P 500 지수가 전날보다 1.84% 떨어져 4225.50 에 마감했다. 해당 지수는 지난 달 31일 이후 6.42% 하락한 상태다.
한편 월가 공포지수로 통하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23일 7.67% 뛰어 31.02을 기록했다. 통상 월가에서 시장 안정성 판단 기준으로 삼는 18을 훌쩍 넘어선 수치다. VIX는 S&P500 지수 옵션 가격이 앞으로 30일간 얼마나 움직일지에 대한 투자자들의 예상을 반영한 지표다.
증시가 조정장에 진입하고 변동성이 커지자 미국 투자자들은 줄지어 S&P500 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분위기다. 앞서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공매도 데이터 업체 S3파트너스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4주간을 기준으로 이달 17일 SPDR S&P500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공매도 금액은 총 85억7000만달러(약 10조2746억원) 늘어나 지난 해 3월 초 이후 최고 증가폭을 기록했다. 공매도는 특정 종목 시세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파이퍼샌들러 증권의 대니 커쉬 옵션 투자 책임자는 "요즘 투자 심리가 정말 좋지 않다"면서 "이달 들어서 고객들의 위험 회피 성향이 두드러진다"고 언급했다.
해당 ETF는 종목 코드인 SPY로 유명하다.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투자 상품으로 한국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끌어왔다. 24일 한국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1~23일 동안 SPY는 국내 투자자 순 매수 10위(총 6581만달러)에 오른 종목이다. 다만 해당 ETF는 같은 기간 6.21% 떨어진 상태다.
미국 투자자들이 S&P500 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것은 특히 대형 기술주 약세 예상에 기반한 것이라는 분석이 눈에 띈다. S3파트너스 집계에 따르면 이달 18일까지를 기준으로 30일 동안 테슬라와 엔비디아에 대한 공매도 규모는 각각 13억달러, 8억4400만달러씩 더 늘어났다. 해당 기간 동안 테슬라와 엔비디아 주가는 각각 약 17%, 9% 급락한 상태다. ACM펀드의 조던 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주요 주가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대상으로 한 공매도 규모를 늘렸으며 전반적으로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주식 비중을 줄이는 중"이라면서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아직까지 비교적 조정을 덜 받은 대형주 주가 하락"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골드만삭스 분석을 보면이달 14일 기준 미국 전체 옵션 거래 중 개별 종목 콜 옵션 거래 비중은 약 16%로 집계돼 지난 2020년 4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정한 개별 종목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낮다는 의미다. 전체 옵션이라 함은 개별 종목에 대한 풋 옵션과 콜 옵션을 합친 것이다. 콜 옵션은 가격 상승, 풋 옵션은 하락에 베팅하는 파생 상품이다. 지난 2020년 4월은 중국발 코로나19 대유행 탓에 뉴욕 증시가 변동성을 키웠던 때다.
다만 일각에서는 하락장을 거슬러 반대 매수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스타우프 캐피털의 줄리언 스타우프 창업자는 "시장 두려움이 커질 수록 매수 기회가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언급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마이클 하트넷 수석투자전략가는 최근 분석 메모를 통해 "시장을 거슬러 미국 기술주를 매수하라"면서 "기술주 밸류에이션이 낮아져 고평가 부담이 줄어든 상태"라고 언급했다. 과거 데이터를 볼 때 지정학적 위기나 연준의 금리 인상은 단기적인 하방 압력이었을 뿐이라는 분석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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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
우크라이나 위기와 연준 금리 인상 예고 탓에 투자 심리가 불안정해진 가운데 오는 26일에는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
웨이 회장이 연례 주주 서한을 발표한다. 연례 서한은 이날 버크셔의 분기 실적 발표와 더불어 공개되는데 버핏 회장이 어떤 발언을 할 지 관심사다. 지난 해 2월 27일 버핏 회장은 연례 서한을 통해 "미국 경제 성장을 거스르는 투자는 하지 말라"고 강조한 바 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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