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전 당원을 상대로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 및 당헌 개정 여부에 대한 투표를 실시한 결과 '공천 의견'이 크게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2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같은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전 당원 투표 결과 당헌 개정으로 결론이 나면 당무위원회와 3일 중앙위원회를 거쳐 당헌 개정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현행 민주당 당헌 96조2항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재·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9일 의원총회에서 "후보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있는 선택이 아니다"며 "후보 공천을 통해 시민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있는 공당의 도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헌 개정 여부를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묻겠다고 밝혔다.
기존 당헌이 여당의 사활이 걸린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을 가로막지 않도록 아예 당헌을 손질하겠다는 것이다.
이 당헌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 시절 만든 것으로, 지지도가 여당에 밀리자 '김상곤 혁신위원회'까지 꾸려 변화와 개혁을 다짐하며 도입한 조항이다.
그해 10월 경남 고성군수 보궐선거 지원 유세에 나선 문 대통령은 이 당헌을 염두에 둔 듯,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되는 바람에 선거가 치러지게 됐는데 새누리당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나" "새누리당이 고성에서 무책임하게 또다시 후보를 내놓고 또 표를 찍어달라고 한다"고 일갈했다.
2017년에는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추미애 법무장관이 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무공천방침을 번복하자 "후안무치하다"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당헌은 정당의 헌법이나 마찬가지다.
이해득실 여부에 따라 당헌을 멋대로 고치면 국민들의 신뢰가 무너지고 정당의 존립기반 자체가 훼손될 수 밖에 없다.
여권내 유력한 대권 주자중 한명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7월 이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으로선)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 장사꾼도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에서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민주당을 향해 "비겁하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쏘아붙이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민주당의 새 당헌 제1조는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네가 하면 불륜'(내로남불)"이라고 꼬집은 것도 같은 연장선이다.
민주당 게시판에도 "한입 갖고 두말하는 민주당이 돼선 안 된다" "불편한 일로 서울·부산시장을 다시 치르게 돼 혈세를 낭비하게 됐는데 국민들에게 미안하지도 않나" 등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내년 서울·부산시장 선거 공천을 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을 각오를 했다면 '전 당원 투표'라는 요식행위가 아니라 일반 여론조사를 통해 제대로 민심을 수렴했어야 한다.
지금처럼 당헌 개정 후 여당 대표가 대국민 사과를 통해 슬쩍 눙칠 사안이 아니다.
잇단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재발 방지대책은 외면한 채 선거 실리부터 챙기는 것은 얄팍한 셈법이자 국민을 우롱하는 행태다.
민주당이 자신들에게 불리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약속과 언행을 뒤집는다면 어느 국민이 여당을 믿고 따르겠나.
민주당은 지난 총선 때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해놓고 당원투표를 통해 기존 약속을 뒤집어 비례정당을 창당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지금 상황에서 더 궁금한 것은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문 대통령의 입장이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성범죄를 포함한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피해자 중심주의'를 강조해왔다.
더구나 문 대통령은 논란이 된 당헌을 도입한 장본인이다.
따라서 이번 당헌·당규 개정에 대해 동의하는지, 반대하는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국민과 지지층에 대한 도리이다.
고 박원순 시장의 성범죄 관련 의혹 당시 굳게 입을 다물었던 것처럼 이번 사안에 대해서도 또다시 침묵으로 일관할 때가 아니다.
공자가 정치에서 강조한 것이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신뢰는 정치의 기본으로 국민 신뢰를
여권이 대의와 명분을 지키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당의 정치 대신,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고 선거 승리에 올인하는 당리당략만 쫓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제 발등을 찍는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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