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저지의 한 운전면허시험장 앞에 민원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4개월 간 행정업무가 마비된 탓에 민원인들이 전날 밤부터 밤새 순서를 기다리는 일이 허다하다. [뉴욕 = 박용범 특파원] |
기자는 뉴저지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이곳을 찾았다. 한국과 달리 거리에 가로등이 별로 없는 칠흙같은 어둠을 뚫고 달려간 곳이다. 이보다 앞서 뉴저지 다른 마을에 있는 MVC에서 추위에 떨며 두 차례나 8시간을 기다린 경험이 있어 이날도 각오를 하고 떠났다. 이번에는 양말도 목이 긴 것으로 찾아 신었다. 휴대용 의자는 필수 준비물이다. 8시간을 서서 기다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도착하자 마자 또 후회를 했다. '조금만 더 일찍 올 걸 ···'. 이미 전날 오후부터 밤새 줄을 선 사람들로 대기 줄은 건물을 한 바퀴를 돌아 외부 주차장 쪽으로 연결돼 있었다. 이 면허시험장은 하루에 고작 약 230명의 민원을 처리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코로나19로 인한 지침을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깜깜한 새벽에 앞에서부터 순서를 세어보니 90번째로 도착한 거 같았다. 오전 내내 추가로 기다려야할 순번이다.
MVC는 평소에도 대기 줄이 길기로 악명 높은 곳이다. 지난 7월 업무가 재개되기 전까지 4개월 동안 폐쇄됐던 탓에 뉴저지 일대 면허시험장은 민원인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알고보니 맨 앞에 줄을 선 사람들 중에는 실제 민원인이 아닌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앞을 지나가니 슬쩍 흥정을 하려는 사람이 붙었다. "80달러만 내시죠. 10번 번호표 앞 자리 내드릴께요." 새벽 4시에 들은 소리다.
시간이 갈 수록 앞번호 자리값은 올랐다. 시간당 임금이 더해진 탓이다. 노스버겐(North Bergen)에 있는 운전면허시험장에서 새벽에 줄을 섰을 때는 아예 노골적으로 명함을 돌리는 줄서기 대행 회사가 있었다. '줄서는 녀석들'(Line Dudes)라는 해시태그까지 명함에 새겨 넣은 이 회사는 줄서는 요금이 2시간에 45달러, 이후 30분당 10달러를 받고 있었다. 시간당 20달러인 셈이니 최저 임금보다 높다. 별다른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꿀 알바'인 셈이다. 미국 행정기관의 비효율로 이런 신종 알바 시장이 생겼다. 그런데 이들 줄서기 대행회사의 명함 뒷면을 보니 업무 범위가 엄청났다. 블랙프라이데이 줄서기, 아이폰 매장 줄서기, 유명 베이글집 앞 줄서기
요즘은 뉴욕시 일대에 망한 쇼핑센터가 폭탄 세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 매장 개장 시간에 맞춰 줄을 서서 입장하는 경우가 많다. 실내 수용 가능 인력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브로드웨이 공연장 줄서기는 없어졌지만 새로운 줄서기 일거리가 생긴 셈이다.
[뉴욕 = 박용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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