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이 조선의 독립을 외친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따졌더니 당시 여주지청 소속 일제 검사가 어린 것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까'(그러냐)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89살의 백운호 애국지사는 오는 15일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정부 포상을 받는 독립유공자 중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1942년 소학교 재학 중 항일전단지를 배포하는 등 활동을 하다 체포돼 6개월간 옥고를 치른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광복절을 앞둔 오늘(13일) 백운호 지사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함께 체포돼 고생하고 숨진 동료들과, 감옥에 간 아들 걱정에 결국 눈이 먼 어머니가 가장 생각이 많이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백 지사는 일제 말기 경기도 이천시에서 소학교를 다니며 동네 선배였던 박영순(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지사가 결성한 '황취소년단'에서 활동했습니다.
현재 기준으로 초등학생∼중학생 나이였던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민족의 역사와 이순신 장군 등 영웅들에 관해 공부했습니다. 만주에 있는 독립군에 가담하기 위해 콩 농사를 지으며 돈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백 지사는 "할아버지로부터 일제의 병탄 과정에 대해 들었고, 조선인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일본 학생·선생들과 싸우며 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항일 정신을 가지게 됐다"고 회상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이들은 이천과 서울을 오가며 버스와 전봇대 등에 '일제는 곧 패망하니 협조하지 말자'는 내용의 벽보를 붙였습니다. 격문을 우편으로 전국 각지 군수에게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은 결국 덜미를 잡혀 그해 3월 '공공의 질서를 해친다'는 죄목으로 단원 전원이 일본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체포된 소년들이 너무 어려 의아했던 일본 경찰은 성인 독립운동가들이 배후라고 확신하고 가혹한 취조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불러내 때리며 배후를 불라고 종용했습니다. 배후는 없고 조선인으로서 할 일을 했다고 진술해도 믿지 않고 매질만 계속했습니다"
당시 백 지사는 나이가 어려 처벌 대상도 아니었지만, 배후 세력에 대해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6개월이나 이천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었습니다. 주동자인 박영순 지사는 단기 2년, 장기 3년 형을 받았습니다.
백 지사는 "나이는 어리지만 경찰에 잡혔을 때 죽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했다"며, "오히려 나이가 어려 더 당당하게 경찰과 검찰에게 항의했고, 참 많이 맞았다"고 회상했습니다.
광복 후 백 지사는 6·25 전쟁에 참전해 11사단에서 2등 상사로 복무했습니다. 우체국 공무원으로 일하며 1977년 박영순 지사와 함께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려 했지만, 수감 기간이 짧아 당시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최근 관련 기준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안 가족들의 권유로 지난해 재신청해 올해 대통령 표창을 받게 됐습니다.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말조차 힘들지만
백 지사는 "일본과 맞설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국력이 강해진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다"며, "다시는 우리 민족이 과거와 같은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더 일본에 끌려다니지 말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후세에 조언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