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출발, 그러나 아쉬운 맺음새다. 공포 그 자체 보단 짜임새에 초점을 맞춘 시도는 좋았지만 중반부 이후 과도하게 진지해져 끝내 정체성이 흔들리고 만, 공포물의 과한 변신 ‘암전’이다.
영화는 8년째 공포 영화를 준비하던 신인 감독 ‘미정’(서예지)은 어느 날 후배로부터 지나친 잔혹함으로 인해 상영이 금지된 영화에 대해 듣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공포 마니아’ 김진원 감독의 상업 데뷔작이다.
가장 무서운 공포물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진 두 영화 감독의 비틀린 열망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으로, ‘공포물은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관념을 깨고 스토리의 내실에 공을 들였다. 단순히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한 장치들을 최소화한 채 꿈을 이루고자 하는 주인공의 광기와 집착을 주축으로 예측불허의 서스펜스, 그리고 색다른 스릴을 입혔다.
미정은 괴소문에 휩싸인 상영 금지된 영화의 실체를 추적하던 중 해당 영화의 감독인 재현(진선규)를 만나게 되지만 그는 이미 폐인이 된 상태. 영화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않은 채 ‘그 영화는 잊어, 죽음보다 끔직한 인생 살기 싫으면’이라는 경고만 남긴 채 사라진다.
열망이 커질수록 더 집착하게 된 미정은 결국 경고를 무시한 채 영화의 원본을 손에 넣게 되고 이때부터 영문을 알 수 없는 끔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암전’은 초중반부까지 주인공의 강렬하고도 극적인 여정을 맛깔스럽게 그려내며 스릴감을 높인다. 역시나 완성도 있는 개연성 덕분이다. 하지만 중반부 이후 그 실체가 벗겨지면서부터 영화는 급속도로 힘이 빠져버린다.
서스펜스와 현실 공감의 적절한 배합으로 높은 몰입도를 선사했던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에는 공포물이라는 그릇에 다소 맞지 않는 치우침으로 스릴감을 산화시킨다. 특히 회심의 한 방을 노린 결말은 정성스레 쌓아온 초중반부의 매력을 급선회시키며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영화의 아쉬운 부분을 상당 부분 상쇄시키는 건 배우들의 열연이다. 이미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진선규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얼굴을 자연스럽고도 몰입도 있게 표현해내는 한편, 서예지는 가히 ‘재발견’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 속 영화’라는 독특한 구성과 세밀하게 신경 쓴 스토리 라인, 여기에 효율성 높은 공포를 입혀 똑똑하게 연출했지만 결정적인 부분에서 장르적 쾌감을 제대로 선사하진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터질 듯 말듯 끝내 터지지 못한, 변신도 진화도 좋지만 정체성이 흔들려 더 낯선, ‘
영화의 제작비는 40억을 드린 ‘곤지암’ 보다도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 등 해외에 이미 선 판매 되는 등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알찬 흥행 질주는 기대할만 하다. 8월 1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8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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