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開發性金融服務 共建 "一帶一路"(개발금융 서비스로써 일대일로를 함께 건설한다)
지난 달 24일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이같은 문구가 담긴 중국 국가개발은행 광고판이었다. 14억 중국 대륙의 관문에 내걸린 강렬한 색채의 메시지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일대일로 구상을 웅변하고 있었다.
기자는 지난 달 말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중국 신화통신사가 공동 주최한 '2019 한·중 언론교류'에 참여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기자는 시 주석이 주창한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의 핵심 프로젝트인 일대일로의 단초를 접할 수 있었다. 일대일로는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비핵화'만큼이나 길고 험난하지만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목표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들은 낙타에 비단을 싣고 사막을 건너 묵묵히 서쪽으로 향했던 조상들과는 달리 막대한 자본과 인력,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중앙아시아를 지나 유럽에 이르는 또다른 실크로드를 내고 있었다.
↑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설치된 일대일로 관련 광고판. [김성훈 기자] |
■한국의 '비핵화' 연상시킬 만큼 당·정부·미디어 총력 홍보
지난 달 26일 중국 대륙 서북부에 위치한 간쑤성(甘肅省)의 성도 란저우(蘭州)에 도착하자 일대일로로 인한 변화상이 보다 구체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란저우는 과거 실크로드 핵심 교통로로 둔황까지 이어지는 하서주랑(河西走廊) 900㎞ 구간의 요충지이자 동서문명의 교차로였다. 이제 란저우는 중국 내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간쑤성과 서북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또 만성적인 저개발 상태를 벗어나 과거 실크로드의 영광을 되찾고 일대일로 구상의 거점으로 발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중국은 황허의 역사와 함께 쌓이고 쌓인 황토로 이뤄진 이 고원을 깎고 다지고 길을 내면서 21세기 신(新) 육상 실크로드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공항에서 란저우 시내로 새로 난 길은 매우 넓고 깨끗했다. 아직 이렇다 할 교통량은 없었지만 중국인들은 고대 육상 실크로드의 관문이었고 지금은 일대일로의 전초기지가 된 란저우의 모습을 시시각각 바꾸며 미래로 나아가고 있었다. 란저우 시내에는 지난 달 지하철이 완공돼 도시의 교통체계가 크게 개선됐다.
란저우 북부의 공항 근처에 지정된 '란저우 신구(新區)'에는 아직 빈 땅이 많았지만 곳곳에 테마파크나 기반 시설들이 건설되고 있었다. 지난 2012년 중국에서 다섯 번 째로 국가급 신구로 지정된 이곳의 면적은 821㎢로 서울(605.21㎢)의 1.3배에 이른다. 중국은 이곳을 개발해 인구 100만의 신도시로 키우려고 분투를 거듭하고 있다. 란저우는 중국 주요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황허(黃河)가 관통하는 곳이다. 마침 란저우에 기자가 도착했을 때에는 도심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는 가운데 마주한 황허의 거대하고 누런 황톳물 줄기는 굽이치며 도심을 가로질러 아득한 곳에 떨어진 바다로 내달리고 있었다.
↑ 란저우를 가로지르는 황허 풍경. 란저우는 황허가 도심을 통과하는 유일한 도시 지역이다. [김성훈 기자] |
■황토고원 깎고 터다져 신도시 조성·고속도로 건설 대역사
지난달 28일 방문한 란저우대학교는 중국 국가 차원에서 대학을 선발해 중점 육성하는 '211공정'과 '985공정'에 모두 선정된 서북 지역의 핵심 교육 기관이다. 이날 귀치 란저우대 당위원회 부서기는 "우리 대학에서는 화학, 물리학, 환경학, 임상의학 등 12개 학과가 ESI(Essential Science Indicators·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연구성과 지표)의 세계 상위 1%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귀 부서기는 "우리 대학은 기존 실크로드 경제연구센터를 2017년에 일대일로 연구센터로 확대·개편했고 현재 '일대일로 대학연맹'의 사무총장 역할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대일로 연구센터가 △서부 실크로드 경제벨트 자원 이용·기후변화 연구 △각종 교육활동 △국제교류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정책 연구·제언에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일대일로 연구센터의 주융뱌오 집행주임(교수)는 "2013년 (실크로드 경제연구) 센터 설립 이후 각급 정부에 건의한 정책 아이디어 가운데 100여 건이 채택됐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센터의 목적에 대해 "일대일로와 관련해 국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언하고 건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란저우대는 일대일로 연구센터와 함께 이탈리아·아프가니스탄 등 일대일로 위의 주요 연결국가에 집중하는 연구조직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또 관련국들과의 경제협력 기회를 모색하면서 안보·테러방지를 위한 해법도 마련하고 있었다. 일대일로의 경제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한 정책적 토대를 단단하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 중국 란저우대학교 관계자들이 지난달 27일 란저우대에서 2019 한중 언론교류에 참여한 양국 언론인들과 만나 일대일로 연구거점으로서의 역할과 그간의 성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한국언론진흥재단] |
■'중국만 유리한 구상' 관련국 우려 불식시켜야할 숙제 여전
중국이 시 주석의 구상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일대일로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도 만만찮다. 일대일로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만 치중해 상대국에 경제적 부담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를 극복하는 것도 엄중한 과제다. 이미 파키스탄은 무리하게 일대일로에 참여하다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는 등 체면을 구겼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도 '일대일로는 결국 중국에게만 이득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불만도 나온다. 아직 중국은 세계 사회와 일대일로 위에 놓인 국가들에게 설득력있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이번 프로그램 가운데 만난 중국 측 관계자는 "우리는 일대일로를 통해 (과거 서양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패권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
[베이징·란저우(간쑤성) = 김성훈 기자]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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