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대 도시이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에서 '커밍아웃한 흑인 여성' 시장이 탄생했습니다.
미국 대도시에서 흑인 여성, 그것도 성소수자 시장이 나온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선거사에 새로운 기록을 쓴 셈입니다.
현지시간으로 2일 열린 시카고 시장 선거 결선 투표에서 '정계 새 얼굴' 로리 라이트풋 전 연방검사가 '거물급 정치인' 토니 프렉윈클을 압도적 차로 누르고 최종 승리했습니다.
개표가 거의 마무리된 시점에서 라이트풋과 프렉윈클의 득표율은 74%와 26%였다고 AP통신은 보도했습니다.
시카고 56대 시장이 될 라이트풋은 "지금 이 순간을 모멘텀 삼아 시카고에 밝은 새 날을 열어가자"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어 라이트풋은 동성배우자 에이미 에술먼과 어린 딸 옆에서 승리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환호하는 군중에게 "오늘 당신은 역사를 만드는 것 이상의 일을 했다. 당신은 변화를 위한 움직임을 만들어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람 이매뉴얼(59·민주) 현 시장의 뒤를 이어 오는 5월 취임하게 됩니다.
미 언론은 라이트풋이 크게 세 가지 면, 즉 흑인 여성이라는 점, 그것도 성소수자라는 점, 정치 경력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이번 선거 결과가 미 정치 역사에 큰 상징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AFP통신은 1837년 이후 시카고에서 단 한 명의 흑인 시장과 단 한 명의 여성 시장이 선출됐을 뿐이라고 전했습니다.
시카고 시는 1979년 첫 여성 시장 제인 번(81)에 이어 1983년 첫 흑인 시장 해롤드 워싱턴(1922~1987)을 선출했고, 전국적으로는 최초의 흑인 여성 연방상원의원 캐롤 모슬리-브론(1992)과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2008)를 배출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이지만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시카고에서 흔히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흑인' '여성' '동성애자' 수식어를 한 번에 단, 정치 무경험자 시장이 탄생한 데 대해 현지 언론은 '정치 머신'(Political Machine)으로 일컬어지는 부패한 시카고 정치에 신물 난 유권자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일리노이 대학의 에번 매켄지 정치과학 교수는 라이트풋의 당선에 대해 "시카고 기성 정치에 대한 도시 전체의 거부"라고 평가했습니다.
뉴욕타임스도 "라이트풋의 승리는 유권자 태도의 현저한 변화, 무명 인사들에게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던 기존 정치 문화에 대한 거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라이트풋은 이번 선거에서 급부상한 시카고 정계의 새 얼굴로, 경찰 감독·감찰 기관의 수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매뉴얼 현 시장이 3선 불출마를 선언하기 전, 이매뉴얼 시장을 겨냥해 시카고 시장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연방 검찰청 일리노이 북부지원 검사, 대형 로펌 메이어 브라운 소속 변호사 등으로 활동했으며, 시카고 시의 총체적 부패를 드러낸 흑인 소년 16발 총격 사살 사건 재수사 과정에서 경찰위원회 의장으로 경찰 개혁과 정치권 부패 일소를 촉구하며 인지도를 높이고 개혁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를 모았습니다.
3선을 준비 중이던 이매뉴얼 시장이 작년 9월 돌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시카고 시장 선거에는 무려 21명의 후보가 뛰어들었습니다.
이 가운데 자격 검증을 거친 14명의 후보가 지난 2월 26일 치른 통합 경선에서 라이트풋과 프렉윈클은 각각 17.54%·16.04%로 1·2위에 올라 결선 투표로 최종 당선자를 가렸습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상무장관, JP모건 체이스 중서부 회장, 오바마 행정부 2대 백악관 비서실장 등을 지낸 정치명문가 출신 빌 데일리(70)도 경선에 참가했으나 두 흑인 여성에게 밀리며 3위에 그쳤습니다.
라이트풋은 결선 캠페인 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 프렉윈클을 앞섰고, 양대 지역신문과 경선 경쟁자들로부터 잇딴 공개지지를 끌어내며 줄곧 선두를 지켰습니다. 대세가 라이트풋으로 기울자 프렉윈클은 선거를 목전에 두고 TV 광고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라이트풋은 오하이오 주 매실런에서 태어나 미시간대학(앤아버)과 시카고대학 법대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전국적으로 악명 높은 시카고 시의 총기폭력·치안 문제와 막대한 규모의 공무원 연금 적자·만성적 재정난 해결을 숙제로 떠안았습니다. 사법 당국에 대한 불신 해소, 부패 정치인·부패 시
한편, 라이트풋과 프렉윈클은 흑인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77) 목사의 제안에 따라, 현지시간으로 결선 투표 다음날인 3일 오전 공동 회견을 열고 승패에 상관없이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