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우주비행을 했던 이소연(40) 박사가 자신이 "(한국의) 우주인 배출 사업이 만들어낸 상품"이라며 우주인 배출사업에 대해 후속 계획이 없었다는 점에서 우주과학발전의 관점에서는 성공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인 이 박사는 한국인 최초 우주비행 10년을 기념해 과학잡지 '에피' 3월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 박사는 한국 우주인 배출 사업을 통해 2008년 4월8일부터 19일까지 10일간 러시아 소유즈 TMA-12호를 타고 우주에 머물며 여러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 박사는 "그때의 저는 우주에 있을 때도 후속사업이 없는지 몰랐고 이후의 다른 계획들이 잡혀 있는 줄 알았다"면서 "귀환해서 우주인 사업이 3년짜리 단기 사업이고 후속 계획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무척 허탈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주에 다녀온 뒤 "그래서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담당자를 만나 이러이러한 실험은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박사는 귀환 후 우주정거장에서 갖고 온 실험결과를 분석하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우주과학팀이 뭐라도 할 수 있게끔 예산을 따러 돌아다녀야 했다고 소개하면서 "당시의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욱한 것 반, 먼 미래를 계획한 것 반의 이유로 한국을 떠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주인 배출 사업이 과학기술의 저변 확대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는 게 목표였다면 그나마 성공적인 사업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국의 우주과학을 발전시키는 게 목표였다면 후속 사업도 없고 후속 실험도 안 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박사는 우주인 배출 사업에 대해 "정책 설계가 부실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그보다는 정책 설계자와 정책 수행자가 바뀌었고 그래서 목표와 방향이 달라졌던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잡지에는 이소연 박사가 우주에서 썼던 일기들이 공개됐다. 당시 우주인 사업을 추진했던 정부 부서의 이름이 '과학기술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로 바뀌면서 우주정거장에서 우주비행복의 패치를 뜯어내고 새 부서 이름이 적힌 패치를 바느질해야 했고 실험장치에 있던 스티커도 새로 붙여야 했던 일화도 처음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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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는 2012년 항공우주연구원을 휴직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 박사는 현재 미국 시애틀의 워싱턴대 공대 자문위원 자격으로 학생들의 연구활동을 돕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인공위성 스타트업 기업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강연 등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