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신작 열 편보다 재개봉 걸작 한 편이 낫다, 라는 말은 최근 영화시장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표현이다. 지난달 치러진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들도 거의 다 개봉했고, 또 다른 신작들을 찾자니 잘 만든 영화들이 거의 안 보인다. 잠시 극장은 접고 나들이라도 가야하나. 아직 단념하긴 이르다. 미세먼지 농도가 심해지는 이때, 영화광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걸작들이 줄줄이 재개봉 했다.
↑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 |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은 프랭키가 병실에 누워있는 매기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병실 밖을 나설 때다. 프랭키는 누워 있는 매기에게 읊조리듯 말한다. "모쿠슈라는 소중한 내 혈육이란 뜻이란다." 몇 번의 자살을 기도하며 거의 의식불명상태로 있던 매기는 이 말을 듣고 프랭키를 향해 마지막 미소를 짓는다. 단순히 권투와 안락사를 다루는 영화는 아니다. 그것을 소재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존재를 두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지에 대한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풀어낸다.
같은 날(8일) 재개봉 한 리들리 스콧의 페미니즘 로드무비 '델마와 루이스'(1991)도 주목할 만하다. 난봉꾼 남편에게 주눅들며 사는 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와 과거 강간 피해의 기억으로 세상에 냉소적이게 된 웨이트리스 루이스(수잔 서랜든)가 주말여행을 떠나며 부딪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평화로워 보이던 여행은 델마가 한 사내에게서 강간 위협에 놓이고, 그 장면을 목격한 루이스가 사내를 총살하면서 본궤도에 오른다. 법망을 피해 달아나는 두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특히나 어수룩하던 델마가 점차 당당히 세상에 맞서게 되는 모습이 사뭇 감동적이다. 20대 꽃미남 시절의 브래드 피트를 볼 수 있는 영화다. 남성의 전유물이던 로드무비를 여성화했다는 점에서 영화사에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억된다.
9일 재개봉한 질 미무니 감독의 1996년작 '라빠르망'도 기대를 모은다. 20년 전 이 영화를 본 비디오테이프 세대의 상당수가 파리에 대한 열병을 앓았던 바. 영화는 사랑의 외피를 두르지만 본격 스릴러물로서 과거와 현재를 절묘하게 교차 편집한다. 감독이 흩뿌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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