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이 2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사무총장 임기 중 마지막 기자회견을 갖고 유엔 10년 성과와 퇴임 후 행보에 대한 계획을 밝히고 있다. 오른쪽은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황인혁 특파원] |
특히 “대한민국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이 한 몸을 불살라서라도 노력할 용의가 있다”는 발언은 반 총장의 대권 도전에 대한 결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뒤이어 진행된 뉴욕총영사관 주최 동포 간담회에서도 “귀국 후 어떤 일을 하는 게 국가에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고뇌한 뒤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하겠다”고 강조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으로 꼽히는 유엔 사무총장직을 매일 100미터 뛰듯 10년간 수행해온 그가 대선의 길목에서 결코 가볍게 임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충청·외교관 출신으로 에두르는 화법에 능한 반 총장은 이날 ‘현직 사무총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 총장은 이날 ‘대통령 반기문의 시대정신’으로 소통과 통합, 탈(脫)정치와 외교안보를 전면에 내세웠다. 누구와도 진솔하게 소통하면서 국민통합을 이루는 지도자상이 필요하다는 점, 기성정치판에 휩쓸리지 않고 외교안보 적임자로서 국격을 높이는 데 매진하겠다는 청사진이다.
‘한국의 지도자상’을 묻는 질문에 대해, 반 총장은 “사무총장 10년 하면서 1년에 국가 정상을 300∼400명 만났다”고 운을 뗀 뒤, 실패한 지도자에게 세가지 충고를 했다고 소개했다. ▲국민의 염원과 고충을 진솔하게 소통하라 ▲정치인이 정파적 계층적 이해관계 내려놓고 민족 전체를 봐라 ▲모든 이해 당사자와 포용적으로 대화해서 해결책 모색하라는 것. 반 총장은 “화합과 통합, 포용적 대화가 진정한 리더십의 요체”라는 강조했다.
이는 반 총장이 ‘불통(不通)’으로 낙인찍힌 박근혜 정권과 선을 그으면서, 정파 싸움으로 갈등만 고조시키는 ‘분열의 기성정치’를 비판한 것으로 읽힌다. 반 총장은 지역과 이념 면에서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점이 강점이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복잡미묘한 국제갈등을 조정하면서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는 리더십을 갖춘 것도 기존 정치인들과 다른 점이다.
반 총장은 국내 정치판을 잘 모르고 확고한 정치세력이 없다는 점도 약점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반 총장은 이날 ‘중간지대론’에 대한 질문에 대해 “현재 서울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복잡하고 정치도 잘 모른다”며 “건전한 상식을 가지고 있고 많은 세계 지도자들을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가 “정당이 뭐가 중요한가. 노론-소론, 동교동-상도동, 비박-친박 이런게 무슨 소용인가”라고 질타한 것도 탈기성정치적 행보와 일맥상통한다.
반 총장 측근들도 “반 총장이 국내 정치판에 별다른 경험과 지분이 없다는 점이 결코 불리하지만은 않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금 국내정치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고 있냐”는 반응을 보인다. 반 총장이 1월 중순에 귀국한 이후 곧바로 정치적 세 불리기에 나서거나 합종연횡의 판에 뛰어들지 않을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반 총장은 국내 ‘반기문 재단’의 설립 가능성에 대해 “아직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고 귀국 후 국민들께 유엔 사무총장 10년 성과를 전하는 보고대회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트럼프 시대가 출범하면서 격랑으로 빠져 들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반 총장의 외교안보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반 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된 것을 이전에는 보지 못했다”면서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시급한 조처를 하고 북한 당국에 강한 메시지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무총장 마지막 날까지 한반도 긴장완화에 기여하고 북한을 공개된 국제사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 긴장감이 높아질수록, 확고한 안보관과 유연한 외교수완을 가진 반 총장이 보수층의 강력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북한 방문계획에 대해선 “현실적으로 말해서 임기가 3개월 반 밖에 남아 있지 않다”, “이 시점에서 어떤 계획도 갖지 않고 있다”고 말해 성사되기 어려움을 시사했다.
반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과는 분명한 선긋기를 시도했다. 반 총장은 박근혜 정부의 실패 원인을 ‘선정의 결핍’이라고 규정했다. 최근 수백만 촛불로 드러난 민심은
[뉴욕 = 황인혁 특파원 / 서울 =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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