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손진아 기자] 남북관계의 두려움이 시작이었다. 심각한 분단 현상을 피부로 느꼈을 때, 거기에서 나오는 두려움이 김기덕 감독의 22번째 신작 ‘그물’을 출발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물’을 통해 말한다. 한반도의 현재에 대해.
‘그물’은 배가 그물에 걸려 어쩔 수 없이 홀로 남북의 경계선을 넘게 된 북한 어부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견뎌야만 했던 치열한 일주일을 담은 드라마로, 올해 개최된 베니스국제영화제,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이다. 김기덕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남북 스스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는지를 우리 스스로가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남북관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영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들여다봤으면 했다. 서로를 의심하고 체계가 지속될수록 개인을 얼마나 불행에 빠뜨릴 수 있는지, 얼마나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김기덕 감독은 ‘그물’을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국가, ‘물고기’는 개인이라는 설명했다. 그는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 류승범, 이원근의 역할에 자신이 현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담아냈다. 특히 1년만의 복귀작으로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선택한 류승범은 우연히 남으로 표류하게 된 북한 어부 철우 역을 맡아 시대의 아픔을 표현하는 감정선의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내 독보적인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외국에 있던 류승범이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연기를 중단하고 유럽에 사는데 외국인 모두가 내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의 작품을 다 찾아봤다고 했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너무 바빴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보면서 의미들을 발견하고 같이 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류승범과 함께 촬영을 할 때는 사실 정신없어서 몰랐다. 내가 직접 촬영하다보니 연기자에게 코멘트 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다 편집하면서 놀랐다. 류승범 본인이 스스로 톤도 잘 조절하고 참 좋은 배우였다.”
김기덕 감독은 명동을 배경으로 한 장면을 자주 사용한다. 영화 ‘나쁜 남자’ 오프닝에서도 등장했고, ‘해안선’ ‘피에타’에도 등장했다. ‘그물’에서는 남측에서 조사 받고 있는 철우를 자본주의가 가득한 곳인 명동 한복판에 풀어놓는 모습을 보인다.
“명동은 내가 좋아하는 장소다. 명동에는 실제로 언제나 많은 사람이 있기도 하고 군중신을 찍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또 명동은 한국 자본주의의 공간이고 상징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현실을 직시해야하고, 남북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한 김기덕 감독은 분단을 주제로 한 영화를 또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자극이 있으면 또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고,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영화의 재료는 인생이고 삶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직접 시나리오를 여러 편 완성한 것은 물론, 연출작도 이미 다수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여러 작품에 만족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김기덕 감독은 오히려 자신을 ‘영화 만드는 기계’라 칭하며 채찍질했다.
“30대, 40대에는 미친 듯이 영화밖에 생각을 안했던 것 같다. 지금은 영화 만드는 기계가 된 것 같아 ‘내 인생이 이게 다 인가’라는 회의감이 들더라. 여기서라도 멈춰야 하고, 다른 인생을 살아봐야 하는데 쉽지 않다. 내 자의로 망하기 어렵다면 타의로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스스로 도태됐다.”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던 김기덕 감독은 1년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1년을 되돌아보며 “염치없는 욕심이다”라고 껄껄 웃었다. 그 욕심을 생각하고 반성하며 머리를 식히고 있는 김기덕 감독은 농부의 삶 외에도 또 다른 자신의 꿈에 대해 언급했다.
“세계 각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살아보고 그곳에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내가 경험한 것을 촬영하고 영화를 찍고, 우디 앨런이 유럽을 대상으로 만들었다면 나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일본에서 시작하려고 했던 작품이 ‘스톱’이었다. 중국도 그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다.”
손진아 기자 jinaaa@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