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뒤에서 또 하나 간다. 중국어선이 돌진하고 있다!”
인천 앞바다 소청도 남서방 76㎞ 해상에서 불법조업을 하고 있던 중국어선을 나포시도 중이었던 우리 해경 소속 4.5t급 고속단정 1호기에 긴급 무전이 날아들어 온 것은 지난 7일 오후 3시께.
곧이어 ‘쿵’하는 충격음과 함께 선체가 기울어졌다. 나포 대상이던 중국 선박에 묶어뒀던 견인 로프 때문에 되레 우리 단정이 중국어선에 질질 끌려가는 상황이 됐다. 당시 일부 대원들은 조타실 철문을 걸어 잠근 중국 선원들과 대치 중이었다.
고속단정에 탔던 해경대원들은 복원력을 상실한 배를 버리고 줄줄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중국 선원들과 대치하던 대원들은 인근에서 출동한 제2 고속단정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 그러나 곧이어 수십 척의 중국 불법어선들이 떼를 지어 단정을 에워쌌고, 해경은 ‘꼬르륵’ 물회오리를 그리며 침몰해가는 제 1단정을 뒤로 한 채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
쇠창살을 사방으로 두르고 떼를 지어 덤벼드는 중국 불법조업 어선에 의해 우리 해상주권이 또 한번 철저하게 유린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9일 국민안전처 해양경비안전본부는 지난 7일 오후 2시 10분경 소청도 남서방 76킬로미터 해상에서 중국어선을 단속하던 우리 해경 소속 고속단정이 다른 중국어선에 들이받혀 침몰했다고 밝혔다. 사고는 중국어선 위에서 선원들을 붙잡기 위해 조타실 문을 뜯으려던 중에 발생했다.
당시 고속단정에 타고 있던 조동수 단정장은 전복 직전에 바닷물로 뛰어들어 화를 면했지만 하마터면 또다른 중국어선에 치여 목숨까지 잃을 뻔 했다.
해경은 전국 해경서와 중국측에 해당 어선을 수배 조치했다. 해경은 선체에 적힌 선명이 페인트에 가려져 뚜렷하지 않지만, 촬영 사진과 영상분석을 통해 100t급 철선 ‘노영어 000호’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어선들은 최근 금어기가 풀리면서 제철을 맞이한 까나리와 삼치를 저인망 그물로 ‘싹쓸이’식 조업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도주한 중국어선을 붙잡아 처벌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중국측 협조 없이는 검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2월 인천해경 고(故) 이청호 경사가 인천 소청도 남서쪽 87km 해역에서 불법조업 중국어선 2척을 나포하려다가 중국 선원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는 일까지 발생했지만 중국어선의 불법조업과 위협은 갈수록 흉포화 되고 있는 중이다.
올 6월에는 서해 북단 연평도 해상에서 나포 작전 중인 해경 단속요원들을 그대로 태운 채 NLL 북쪽 해상로 중국어선이 달아나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국어선들이 수십척의 배를 연결해 거대한 선단을 만들고 철선의 사방을 쇠창살로 두르거나 등선 방지용 그물을 설치하는 등 사실상 ‘해전’을 치르는 태세로 중무장 하고 있다. 손도끼는 물론 쇠파이프를 휘두르거나 불을 지르는 등의 흉폭한 저항도 서슴치 않고 있다.
이번엔 아예 해경 승선에 대비해 ‘방탄’까지 갖췄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경 관계자는 “이번에 나포작전 중이었던 중국어선 조타실 문을 부수려고 소총까지 발사했는데 방탄유리인지 부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긴박한 대치과정에서 우리 해경은 40mm 다목적 발사기, K1 소총, K5 권총 등 무기를 허공에 대고 몇발 쐈을 뿐이다. 해경은 “중국 어선들이 우리가 조준 사격을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최근 ‘사드배치’ 등으로 촉발된 중국과의 외교 갈등을 우려해 소극대응해 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해경은 사건이 발생한 7일 바로 언론에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통상 해경이 중국어선 1척을 나포해도 당일 곧바로 보도자료를 배포하며 실적을 홍보하던 때와는 달랐다. 이러다 보니 안전처 등 정부 고위급에서 이번 사건이 알려지지 않도록 통제를 시도했다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채증자료와 해경 대원들의 진술 등을 모두 확인하고 외교적 대응방안을 마련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무엇보다 3005함이 8일 아침에서야 항구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에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해경은 9일 오전 주기충 주한중국대사관 부총영사를
[인천 = 지홍구 기자 / 서울 =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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