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불똥이 돌잔치와 돌반지로 옮겨붙고 있다. 김영란법상 허용되는 경조사 대상에서 돌잔치가 빠지면서 미리 돌잔치를 준비하던 공무원·교사 등 법적용 대상자들이 부랴부랴 예약을 취소하고 있다.
이로 인해 뷔페·레스토랑 등의 피해가 커지고 있고 귀금속 업계에선 가뜩이나 사라져가는 ‘돌반지’가 멸종할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시 강북구 상봉역 인근 A외식 레스토랑. 여느 때면 부부가 한복을 곱게 맞춰 입고 돌잔치 하객들을 맞느라 분주할 시간이지만 이날 예약자 명단은 텅 비어 있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B씨는 “주말 사이 잡혀있던 돌잔치가 5건이나 취소됐고 방금전에도 오늘 예약을 취소하는 전화를 받았다”며 “갑작스레 예약이 취소되면 대신 자리를 채우기 어려워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하소연 했다.
특히 서울 광화문 일대와 세종시 등 공직자들이 집중된 지역의 상가들은 김영란법으로 인해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세종시의 한 해산물뷔페는 김영란법 시행이후 돌잔치 예약과 매출이 30%가 줄었고, 지난 2일에는 돌잔치가 한 건도 없어 개점휴업 상태에 놓였다.
뷔페 운영자 최 모씨는 “지금 세종 상권은 김영란 법 때문에 난리가 났다”며 “가게 임대료는 비싸고 손님은 한정돼 있는데 힘없는 자영업자가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탄했다. 최 씨는 김영란법이 들이 닥친 이후 영업 부진으로 세종시내 주요 상가들 중 가게를 내놓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돌잔치 계획이 어그러지면서 부모들 역시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돌잔치가 김영란법에서 허용되는 경조사에서 제외되자 손님들이 참석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약했던 식당, 뷔페에서 계약금만 날릴 상황에 처하면서 각 지역별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서는 김영란법으로 인해 돌잔치 계획이 틀어졌다며 불만을 표하는 글이 다수 확인됐다.
공무원 남편을 둔 C씨(인천 거주)는 “김영란법 때문에 공무원 가족들은 직격탄을 맞았다”며 “사정을 이야기해도 돌잔치 업체 측에서 들어주지 않았고 계약금이 아까워 최소 보증 인원(30명)만 채워 돌잔치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급하게 하객을 모은 일부 돌잔치의 경우 축하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n분의1’ 더치페이로 돌잔치를 치르는 해프닝도 나왔다. 지난 주말 경기도 일산 지역에서 딸아이의 돌잔치를 치른 김 모씨(33)는 “국가에서 출산 장려한다고 해놓고 돌잔치까지 부정청탁으로 막아버렸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돌잔치 대명사인 ‘금반지’ 역시 김영란법 ‘찬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는 돌반지 가격은 15~30만 원대. 김영란법에서 규정한 경조사비(10만원 이하)에 결혼식, 장례식 등과 달리 돌잔치가 제외되면서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들은 5만원을 초과하는 선물은 받을 수 없다.
온라인에서 돌반지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한 업체는 “7~9월은 원래 돌반지가 잘 팔리지 않는 비수기인데다가 명절까지 겹치면서 매출이 급감했다”며 “여기에 김영란법까지 들이닥치면서 주문량이 평소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귀금속 매장은 결혼 예물, 커플링 등 다른 대체 상품이 있어 직접적인 타격이 가시화 되고 있지 않지만 법 시행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을 극도로 우려하는 표정이다. 서울 종로에서 귀금속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오 모씨는 “가뜩이나 최근 금값이 상승세로 돌아선 이후 금 제품을 선물하는 경우가 줄고 있는데 김영란 법으로 또 한 번 타격을 입을까 걱정”이라며 “법시행 이후 돌반지는 친척끼리도 아예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이날 매일경제 취재에서 상당수 상인들은 “돌 반지에 무슨 김영란법”이냐며 “경조사라서 돌은 예외 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법 시행 이후에도 아직까지 내용 자체를 잘 모르는 상인들이 대부분이란
4일까지 국민권익위원회는 1018건의 유권해석에 대한 질의를 받아 하루 평균 170건에 달하는 상담 건수를 기록했다. 실제 국민권익위원회와 경찰청으로 접수되는 이 같은 상담 문의 상당수에 돌잔치 관련 문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준호 기자 / 정희영 기자 /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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