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 아니되옵니다"
임금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신하 중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꼭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사간원'의 관리들입니다. 사간원은 왕에 대한 비평과 대신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죠. 궁궐의 언론기관으로 왕권을 견제하는 유일한 기관이었거든요. 때문에 조선의 임금들은 정무적 결단을 내릴 때마다 사간원 관리들의 의중을 물었고, 태종 이방원은 왕권 강화를 위해 사간원을 독립시켜 대신들을 감시하도록 했었습니다.
이처럼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기에 사간원 관리들의 제 1덕목은 '청렴결백'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사간원 역할을 하는 곳이 오늘날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입니다. 이곳 역시 대통령 비서실 소속으로 국민 여론을 수렴하고, 대통령의 친인척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감사원 등 주요 사정기관의 활동과 인사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민정수석이 반대하는 승진인사는 불가능하다', '대통령 권력의 절반 이상이 민정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막강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과 부담감 또한 클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두 차례나 민정수석실을 책임졌던 문재인 전 의원은 '민정수석 1년 만에 이를 10개나 뽑아야 했다'며 당시 직무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었죠.
민정수석실은 공직자를 견제하고 국민의 권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그 옛날 사간원과 같이 '청렴결백'을 우선시합니다. 역대 정권들 역시 민정수석의 인사를 그 정권 도덕성의 표상으로 여겨 신중에 신중을 기했지요.
하지만, 역대 정부 어느 한 때도 민정수석이 명예롭게 퇴진한 사람은 없습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부임한 민정수석들은 모두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되거나 사퇴했습니다.
문제는 검찰이 이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모두 사퇴를 하긴 했지만 대부분 서면조사만 받았고, 그뒤엔 무혐의 처리됐거든요.
그리고 요즘은 우병우 민정수석의 이름이 연일 언론에 거론되고 있습니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실세로 꼽히는 사람입니다. 민정비서관 임명 8개월 만에 역대 최연소급 민정수석으로 발탁된 우 수석. 처가와 넥슨의 수상한 부동산 거래·아들의 병역 특혜 의혹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의혹 제기에 청와대도, 여당도 곤혹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결국 특별감찰을 받는다는데, 특별감찰은 재직기간 중에 발생한 의혹에 대해서만 조사가 가능하죠. 그러기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특별감찰'이 우 수석에게 면죄부를 주기위한 '묘수'라는 말까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등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주요 국가엔 우리의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같은 부서가 없습니다. 공직자의 비리도 '죄'로 처리하면 되니까요.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작은 청와대를 내세우며 민정수석실 폐지가 거론됐지만 법무부와 감사원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습니다.
국민의 생각과 감정을 읽고, 고위공직자를 감시하며 대통령에게 '아니되옵니다'를 간언해야할 민정수석이 의혹의 중심에, 게다가 그 의혹이 눈덩이 처럼 커지고 있는 요즘.
스스로에 대한 감시에 소홀했던 우병우 수석은 누가 결정을 내려줘야 자신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