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는 절대 안돼(Never Hillary).”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편파적인 민주당 지도부 이메일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되면서 봉합 국면을 맞았던 힐러리와 버니 샌더스간의 갈등이 다시 폭발했다.
24일(현지시간) 오후 민주당 전당대회 준비로 한창인 펜실베니아 필라델피아 웰스파고센터 옆 루스벨트공원에는 수백명의 샌더스 지지자들이 모여 ‘힐러리 반대’를 외쳤다. 시위에 참가한 대학생 존 스탠튼(22)은 “힐러리가 거짓말쟁이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대의원 투표에서 샌더스가 힐러리를 꺾고 민주당 후보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대가 들고 있는 피켓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반대(No TPP)’ ‘월가 반대(No Wall Street)’ 등 정책적인 문구에서부터 ‘버니에게 희망을’ ‘힐러리 꺼져라’같은 노골적인 문구도 눈에 띄었다.
시위가 격화되면서 경찰 보안도 한층 강화됐다. 전당대회장을 중심으로 반경 500m 가량 차량 출입이 통제됐다. 차량 통행이 중단된 대회장 인근에는 자전거를 탄 경찰들이 번갈아가며 순찰했다. 가까운 고속도로 출구와 지하철역 등은 폐쇄됐다. 하늘에는 경찰 헬기가 선회비행하며 공중 감시망을 가동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버니 샌더스 지지를 업고 무난히 전당대회를 치를 것으로 예상했던 힐러리 진영은 때아닌 악재를 만나 당황하고 있다. 편파 이메일 논란의 중심에 선 데비 와서먼 슐츠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의장은 사태가 확산되자 전당대회를 마무리짓고 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전당대회에서 예정됐던 슐츠 의장 연설도 취소됐다.
이제 미국 정치권의 관심은 25일 전당대회에서 예정된 샌더스 연설에 쏠렸다. 샌더스가 예상을 뒤엎고 힐러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거나 반기를 든다면 대선 판도는 요동칠 수밖에 없다. 샌더스 지지층을 흡수해 안정적인 본선 행보를 시작하겠다는 힐러리측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이메일 스캔들은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DNC 지도부 인사 7명이 지난 해 1월부터 지난 5월 25일 사이에 주고받은 이메일 1만 9252건을 공개한 것이다. 이메일에는 종교를 빌미로 샌더스 낙마를 종용하거나 샌더스 진영 인사를 노골적으로 비방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샌더스는 CNN에 출연해 “이번 이메일 사건은 DNC 내부의 편견과 기득권에 대한 집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비난했다. 샌더스 지지 대의원들이 팀 케인 부통령후보의 연설 때 항의 표시로 단체로 회의장을 떠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샌더스는 그러나 ABC에 출연해서는 “충격을 받은 게 아니라 실망했다”며 “그러나 기존 입장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샌더스 지지자 중에 현실을 인정하는 시위 참가자도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딘 나지프(34)는 “경선 결과가 바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게 할 수도 없다”면서 “다만 샌더스 공약이 더 많이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무소속 또는 제3당을 통해 대선 출마를 저울질했던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힐러리를 지지하기로 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전당대회 기간 중 연설에 나서 힐러리를 공식 지지를 선언할 예정이다.
이로써 루돌프 줄리아니 현 뉴욕시장과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각각 트럼프와 힐러리를 지지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게 됐다. 블룸버그는 트럼프에 대해 ‘분열적 후보’라며 비판해왔고
힐러리 캠프에서 블룸버그에게 전당대회 연설을 요청했고 블룸버그는 이를 검토하던 중 연설문에 민주당의 정강·정책보다는 자신의 정견이 많이 반영된 것을 알고 연설을 수락했다는 후문이다.
[필라델피아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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