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는 거대한 흐름이다. 마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로 바뀐 것처럼 사람이 운전하는 자동차라는 개념은 가까운 미래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테슬라 자율주행차 사고 소식이 이런 흐름을 바꿔놓지 못한다. 물론 그 과정은 간단치 않다. 자율주행 시스템 기능이 증가함에 따라 컴퓨팅 성능도 대폭 향상돼야 한다. 그래서 인텔은 자율주행차를 ‘달리는 슈퍼컴퓨터’ 혹은 ‘도로 위의 데이터센터’라고 부른다.
자율주행차는 사물인터넷(IoT)의 여러 영역 가운데 가장 기술 집약적 디바이스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컴퓨팅 파워·데이터 분석·보안·통신·교통신호체계·지도 등 광범위한 연동이 필요하다. 완성차업체들, 센서 업체 등이 너도나도 인텔과 손잡으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텔이 집중 투자하고 있는 컴퓨팅·보안·통신·클라우드 분야는 자율주행차 상용화와 직결돼 있다.
자율주행차는 커넥티드카와 혼용돼 쓰여왔으나 업계에서 봤을 때 개념은 약간 다르다. 커넥티드카 기술은 탑승자들이 차안에서 인터넷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앱, 내비게이션, 자동차 진단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자율주행차 기술은 보행자와 교통신호를 인식하고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레이저로 차량간 거리를 측정하거나 첨단 위치정보로 주변 환경을 감지한다. 모두 IoT와 5세대(5G)라는 차세대 통신 네트워크가 충족돼야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미래 기술들이다.
이런 구도 속에서 인텔의 입지는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인텔은 센서를 통해 감지한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고 판단하는 인텔리전스, 즉 컴퓨팅 기술을 바탕으로 디바이스를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에 연결하는데 독보적 기술을 자랑한다. 5G나 LTE 등 데이터 소통에 필요한 통신 기술을 지원하고 해킹에서 보호하는 보안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자율주행차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
올초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기조연설에서 ‘모바일 붕괴’를 얘기한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 말처럼 인텔은 드론부터 자동차까지 전 디바이스를 잇는 플랫폼 업체로 도약하려 하고 있다.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이던 과거와도 달라졌다. 지난 5월 러시아 자동차 소프트웨어 업체 ‘잇시스’를, 4월엔 이탈리아 산업용 가상현실·IoT 솔루션업체 요기테크 등을 인수했다.
최근 인텔은 자동차 충돌 방지 소프트웨어·센서 개발 기술 분야 최고 기업인 모빌아이, 그리고 완성차 업체인 BMW와 협력해 ‘달리는 슈퍼컴퓨터’ 분야를 선도하겠다고 선언했다. 더그 데이비스 인텔 IoT 그룹 총괄책임 부사장은 “자율주행차 기술은 차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며 “5G 시대가 되면 안에서 밖으로 연결이 확장된 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할 것”이라고 했다.
인텔은 5G와 자동차, IoT의 ‘만남’을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데이비스 부사장은 “운송의 혁신은 IoT와 클라우드, 빅데이터, 보안과 안정성, 그리고 5G 네트워크의 결합”이라며 “인텔은 자동차를 새롭게 창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교통이라는 개념 자체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통의 미래에 대한 인텔의 최대 비전은 ‘무사고’다. 지난 1일 독일 뮌헨에서 모빌아이,BMW 등과 공동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인텔은 “테슬라와 같은 안전 사고가 발생해서는 안된다”며 “기술의 진보보다 사람의 이동에 안전성을 부여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인텔은 밀집한 차량간(V2V) 실시간 충돌을 피하기 위한 기술, 수 테라바이트 규모 데이터를 처리하는 컴퓨팅 파워 기술을 갖고 있다.
인텔 관계자는 “자율주행차 개방형 오픈 플랫폼을 통해 관련 소프트웨어가 많이, 빠르게 개발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며 “광범위한 협력 파트너와 함께 생태계를 보다 풍요롭게 꾸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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