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 판결…'동상이몽' 아세안
↑ 남중국해/사진=연합뉴스 |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이 국제법정의 남중국해 영유권 판결로 또다시 외교적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작년 말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의 통합을 내세운 아세안 공동체가 출범했지만 10개 회원국이 역내 안보 현안에 대해서는 미국, 중국 두 강대국과 얽힌 경제·외교적 이해관계 탓에 한목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12일 원고측인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남중국해 판결로 미국과 중국의 '강 대 강' 대결이 격화하면서 아세안의 분열상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필리핀 정치분석가인 리처드 헤이다리안 데라살레대 교수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아세안의 불화를 일으키는 사안이었고 이번 중재 판결 또한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이는 아세안 국가들의 엇갈린 행보에서 비롯됩니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국제재판소로 끌고 간 필리핀은 베트남과 함께 아세안 차원의 공동 대처를 계속 요구했지만, 분쟁 당사국 간 해결을 주장하는 중국의 편에 선 캄보디아, 라오스의 반대로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아세안이 중국과의 외교장관 특별회의에서 남중국해 사태와 관련해 중국을 겨냥, "신뢰와 확신을 무너뜨리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최근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가 철회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필리핀은 자국에 유리하게 나온 남중국해 판결 덕분에 중국과 대립하든 대화하든 우위에 설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습니다.
지난 6월 말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적대 모드'에서 '대화 모드'로 대중 외교노선을 전환한 필리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립니다.
일단 필리핀은 중국에 남중국해 자원 공유를 위한 대화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군비 경쟁을 하는 것보다 분쟁해역의 자원을 공유해 경제적 실리를 챙기겠다는 것이 두테르테 대통령의 계산입니다.
이에 따라 대중국 강경책을 펴온 미국과 필리핀의 동맹 관계에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페르텍토 야사이 필리핀 외무장관은 중국과 대화를 하기 전에 미국, 일본, 호주 등 동맹국과 먼저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겪는 베트남에도 이번 판결은 호재입니다.
그동안 베트남은 남중국해 분쟁해역에서 중국의 석유탐사, 중국 선박의 잇따른 베트남 어선 공격, 중국군의 군사훈련 등에 대해 베트남 주권 침해라고 공개적으로 반발했습니다.
다만 레 하이 빈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은 이달 초 중국과 필리핀의 영유권 다툼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정을 주문하면서도 필리핀과 달리 중국에 판결 내용의 존중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한 외교소식통은 "베트남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 국제적 압력을 가중할 수 있는 중재 판결의 수용까지 요구할지 고심하고 있다"며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수위 조절을 통해 실리를 극대화하는 외교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것이 베트남의 의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남중국해 문제만큼은 '반미, 친중' 노선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중 캄보디아가 두드러집니다.
일부 국가와 국제중재재판소 간의 정치적 음모론까지 제기한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캄보디아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당사국이 아니다"며 "중재 판결을 지지하는 어떤 공동 성명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몇 차례 공언했습니다. 캄보디아 외교부는 이런 입장을 재확인하는 성명을 지난 주말 발표했습니다.
화교 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말레이시아는 중국에 대한 비판을 자제합니다. 반면 중국과 어업권 분쟁을 겪는 나투나 제도에 군사기지를 확장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반중 목소리를 높일 수 있습니다.
중국이 이번 판결에 반발해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 시설화에 속도를 내고
미국이 '항행의 자유' 군사작전을 확대하는 등 중국 압박 수위를 높여 군사적 긴장이 한층 고조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이 아세안을 상대로 우군 확보를 위한 외교전이 가열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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