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권하는 섬마을…여교사 거절하면 '싸가지 없다' 찍혀
↑ 섬마을 여교사/사진=MBN |
"고립된 섬에서 마을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주민들이 권하는 술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 '싸가지 없다'고 찍히면 교사로서 섬에서 생활하기도 힘들어진다"
전남의 한 섬마을 학교에서 근무하는 A여교사는 "섬에서는 제사나 집안 행사로 음식을 준비하면 불러서 나눠 먹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한다"며 "술자리로 이어질 것이 뻔한 데 그것을 거부하기 쉽지 않다"고 섬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는 "호의를 베푸는데 거절하면 섬 특성상 학부모·지역민과의 유대와 친화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불러낸 사람들이 학교와 관련된 사람들이면 술자리든 식사자리든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전했습니다.
A교사는 "관사가 눈앞에 보이는 곳이 대부분이라 좁은 동네에서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다"며 "그 자리에 안 가면 관사에 들어가 불을 켜야 하는데 그러면 거짓말이 들통나 두고두고 찍힌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또 섬마을 여교사를 둘러싼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문도 여교사들을 괴롭힙니다.
B교사는 "나와 상관도 없는 근거없는 얘기들이 마을에서 돌아 황당한 적이 있다"며 "마을 사람들이 말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아 입을 항상 무겁게 하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이 교사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고 있다"며 "어쩌다 그냥 지나치기라도 하면 바로 버릇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정말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섬마을 여교사 어려움은 전남 섬 지역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경남의 한 섬마을에서 3년간 근무했다는 여교사도 섬 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음을 호소했습니다.
중학교까지 있는 비교적 큰 섬에 근무했는데도 관사에는 CCTV가 1대도 없었다고 그는 기억했습니다.
이 여교사는 "관사의 보안시설이 취약한 점은 맞다"며 "혼자 섬 근무하는 게 꺼려져 자녀 2명을 데리고 들어가 3년을 살았고 퇴근하면 관사에서 잘 나가지 않고 애들과 함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올해 3월 인천의 한 섬에 초임 발령받은 C 여교사는 이번 사건 이후 자신의 안부를 걱정하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C교사는 "밤에는 무서워 관사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 낸다"며 "다른 남성 교원 2명, 학교시설 관리직원, 영양사 등도 함께 살고 있지만 해가 지면 수차례 출입문이 잠겼는지 확인한다"고 털어놨습니다.
이 교사는 "안면이 있는 학부모나 주민이 식당에서 합석한다고 해도 이를 거부하기는 어렵다"며 "섬에서 최소 2∼4년 근무하는데 생활 여건과 안전에 교육 당국이 좀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관사까지 가로등도 없는 농로를 5분이나 걸어 가야 하는 섬마을에 근무하는 초임 여교사도 있었습니다.
신규 임용돼 올해 3월 섬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한 20대 D 여교사는 "가로등이 없어 휴대전화 조명을 켜고 다닐 정도"라며 "이번 사건 이후 동료 여교사들도 모두 불안해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신규 임용교사를 외딴 섬에 보내는 것에 대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D교사는 "초임 교사의 경우 교육현장에서 배워야 할 점도 많은데 연수나 교육 기회가 적은 외딴 섬에서 근무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며 "더욱이 신체적으로 약하고 어린 여교사들을 처음부터 섬으로 보내는 것은 신중하게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관사를 하루빨리 많이 교직원들이 함께 거주할
전남 신안의 섬 학교에 근무하는 다른 여교사는 "학교별로 있는 관사를 연립주택 형태로 바꾸는 것이 현재로써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며 "방범과 사생할 보호 측면에서 지금의 관사보다 훨씬 개선될 점이 많을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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