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김진수 기자] 돌고 돌아온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늦은 것은 아니다. NC 다이노스 내야수 이강혁(25)은 이제 진짜 ‘미라클’을 꿈꾼다. NC는 지난해 12월 독립구단에서 뛰고 있던 이강혁을 영입했다. 독립구단의 이름은 연천 미라클.
이강혁은 그보다 앞선 11월 NC의 부름을 받아 최종 테스트 무대였던 청백전에서 타율 0.348를 기록했다. 그는 홈런 1개와 2루타 4개, 8타점 등 영양가 있는 활약으로 NC 코치들로부터 눈도장을 찍었고 마침내 프로 입단에 성공했다. 2010년 삼성 라이온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이후 2년 만에 방출된 뒤 고양 원더스, 연천 미라클을 거쳐 약 5년 만에 다시 입은 프로구단 유니폼이었다.
이강혁은 현재 고양국가대표 야구훈련장 NC 잔류군과 함께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2014년 고양 원더스에 있었던 이강혁에게는 익숙한 곳이다.
↑ 연천 미라클이라는 독립구단을 거쳐 온 NC 다이노스 이강혁. 이제 그는 진짜 기적을 만들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사진은 지난 5일 고양 국가대표 훈련장에서 훈련중인 이강혁. 사진(ㄱ고양)=정일구 기자 |
20대 초반 프로에 입단했으나 쓴 맛을 봤던 그는 어느 덧 20대 중반이 됐다. 그만큼 그는 야구에 대해 더욱 간절해졌고 마음가짐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는 “엄청 돌았다. 돌아서 온 만큼 원하던 곳에서 야구를 하니까 마음이 새롭다”고 웃었다.
이강혁에게 미라클에서 뛰던 나날들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자신의 실력을 끌어올리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최대한 실력을 유지하면서 경기에 나섰다. 이강혁은 경기에 나설 때마다 온 힘을 다했다. 이강혁은 “매 경기 뼛속까지 불태웠다”고 표현했다.
그는 “없던 힘도 생긴다고나 할까? 진짜 힘든데 야구장에서 경기를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솟더라. 경기 끝나고 방에 들어가면 항상 녹초가 돼 있었고...항상 반복했다”고 회상했다.
연천 미라클 시절에는 힘든 상황도 많이 겪었다. 샤워시설은 잘 돼 있었지만 목욕탕이나 한의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동료들과 함께 차를 빌려서 30km 떨어진 곳까지 나가야 했다. 선수들이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강혁은 배팅볼까지 직접 던졌다. 이강혁은 “큰 부담은 없었다. 내가 던져서 타자가 잘 치면 서로 좋은 거다. 더 훈련도 되고”
프로 유니폼을 입는데는 성공했지만 이강혁에게는 또 다시 새로운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잘해야 독립구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이강혁은 잘 알고 있다.
“새로운 도전이다. (프로에) 들어온 것이 끝은 아니다. 시작점에 다시 왔다. 독립구단에서 야구를 하는 것들이 모두 좋은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강한 마음을 먹고 갔었다.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관심과 도움을 받으면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야구를 할 수 있다. 제가 (미라클에서) 선두주자로 나온 만큼 행동을 못하면 안된다. 책임감이 있다. 잘하는 만큼 미라클 출신들이 잘됐다는 케이스가 될 수 있다”
↑ 이강혁은 고양 원더스와 연천 미라클 때의 경험과 기억들이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강혁은 이제 예전보다 더 단단해진 마음가짐으로 1군 데뷔를 꿈꾼다. 사진(고양)=정일구 기자 |
인터뷰 처음에는 ‘돌고 돌아서’ 프로에 돌아왔다고 표현했던 이강혁은 인터뷰를 마쳐갈 때쯤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런 말을 했다.
“돌아서 왔다기보다는 각자 인생이 있는 거다. 내 인생에 있어서는 내가 조금 더 겪어야 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내가 조금 더 긴 과정을 거쳐서 왔다는 것이 더 많는 것 같다. 미라클과 원더스에 있었던 경험이 나중에 힘든 일이 왔을 때 나를 쉽게 무너지게 하지 않게 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과정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잘 나가면 좋겠지만 그건 내 인생이 아닌 것 같다. 조금 더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는 인생이었다”
[kjlf2001@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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