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문제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1970년대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을 주도했던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의 길을 가고 있다. 김 제1비서는 지난 7일 인공위성 발사로 포장된 사실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강행하면서 ‘나홀로’ 핵개발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12년 권력승계 이후 핵무력·경제발전 병진노선을 내건 뒤 좌고우면하지 않고 핵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작업들을 진행했다. 그는 지난 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제국주의자들의 압력과 회유에 못이겨 이미 있던 전쟁억제력(핵무기)마저 포기했다가 침략의 희생물이 되고만 발칸반도와 중동지역 나라들의 교훈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포기 후 비극적 최후를 맞았던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전철을 밟지 않고 “풀을 뜯어먹고 살더라도 핵을 가져야 한다”라던 부토 전 총리의 노선을 따르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북한이 강행했던 핵·미사일 실험은 인도·파키스탄과 같은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기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국제사회의 인정 여부와는 관계없이 실체적 핵무력을 개발해 국제 안보질서에서 더욱 무시할 수 없는 위치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이다. 또 미국 대선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에서 ‘포스트 오바마’를 노리는 대선주자들에게 북한·북핵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차기 미국 대통령과 ‘북미 평화협정’ 문제를 담판짓기 위한 밑돌을 놓는 포석일수도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에는 오는 5월 개최될 35년만의 당대회 등 내부적 요인도 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이번 당대회의 최대 화두인 경제·민생 향상과 관련해 일부 대규모 건설사업을 제외하고는 내놓을만한 성과가 없어 핵·미사일 실험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을 대대적으로 선전해 김 제1비서의 리더십을 부각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7일 ‘인공위성’ 발사 성공 소식을 전하며 이를 김 제1비서의 과학기술 중시정책의 큰 성과로 강조한 바 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9일 “북한은 임기 마지막 해에 접어든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는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미·중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압박하기 힘든 상황을 활용해 핵능력 진전, 고도화에 주안점을 뒀을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시기적 상황을 감안해 김 제1비서의 존재감을 외부에 각인시키고 내부적으로 5월 7차 당대회를 앞두고 내부결속을 도모하려는 의도를 가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세계를 상대로 핵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이면에는 미·중 간 패권갈등이 있다. 북한은 동북아시아에서 ‘G2(주요 2개국)’가 대립을 거듭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지정학적·전략적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자신들의 멱살을 잡되 숨쉴 공간을 열어주는 중국·러시아의 미온적 대응과 사실상 제재수단이 미약한 한·미·일의 틈바구니 속에서 북한이 가시를 세우고 웅크린 고슴도치같은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 동해상 단·중거리 미사일 발사와 휴전선(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저강도 도발을 지속하며 남측을 압박하는 식으로 높은 긴장수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김 교수는 “북한이 중국을 감안하면 5·6차 핵실험 등 질풍노도 식으로 몰아붙이기에는 부담이 있을 것”이라며 “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와 관련해 중국도 북한에 불만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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