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2015년 대한민국 최고의 화두는 ‘헬조선’이다. 희망 없는 사회를 지칭하는 인터넷 신조어로 신분계급이 명확한 ‘조선’에 지옥이란 뜻의 ‘헬(Hell)’을 더했다. 계급론인 ‘수저론’이 유행했고, 급기야 탈출한다는 의미의 ‘탈조선’이란 말까지 번졌다.
연예가도 ‘헬조선’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불통의 권력층을 다룬 영화 ‘베테랑’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고, 조혜정, 이진아 등 연예인 2세의 활동을 두고 ‘금수저’ 논쟁이 불붙었다.
‘쿡방’이나 ‘먹방’이 새로운 예능 트렌드를 만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발전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꽉 막힌 세대들에게 ‘큰 돈 없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요리라는 소재는 흥미를 끌었고, 연예인이 아닌 요리사들이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 디자인=이주영 |
그러나 올 한해 TV는 영향만 받았을 뿐, 사회부조리를 지적하거나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일을 등한시했다. ‘헬조선’ 내 청춘들을 이용했지만, 그뿐이었다. 특히 드라마나 예능에서는 그 경향이 더욱 심했다.
올해 최고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MBC ‘그녀는 예뻤다’나 SBS ‘용팔이’의 경우 ‘고난에 처한 주인공의 성장’을 다루고 있지만, 그 과정이나 설정에 있어서 ‘헬조선’ 내 청춘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녀는 예뻤다’ 속 김혜진(황정음 분)은 못생긴 인턴으로 나왔지만 결국엔 부편집장과 재벌 2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신이 맡은 일까지 좋은 결과로 이끄는 ‘알파걸’이다.
‘용팔이’는 태생부터 다르다. 김태현(주원 분)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지만 명석한 두뇌로 신임 받는 의사가 돼 재벌인 연인과 그를 둘러싼 음모를 파헤친다. 이밖에도 가족드라마를 표방하는 KBS2 ‘부탁해요 엄마’는 가난한 집안 세 자식 모두 직업적으로 성공하거나 재벌 연인을 만나고, ‘내딸 금사월’ 역시 재벌 애인의 비호 아래 모든지 척척 해내는 ‘알파걸’이 등장한다.
예능프로그램도 다르지 않다. 사회 부조리를 향한 풍자나 촌철살인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였다. 리얼버라이어티의 홍수로 이를 날카롭게 담아낼 그릇이 없던 것이다. 블랙코미디를 다룰 수 있었던 코미디 쇼들은 유행어 남발, 식상한 소재 등으로 인기가 하락했고, 일부는 사라지기도 했다. ‘SNL 코리아’나 ‘개그콘서트’ 등 인기 개그 프로그램들도 정치사회 풍자 대신 ‘섹드립’이나 유행어 제조에 힘쓰며 ‘헬조선’ 현실을 외면했다.
대신 ‘쿡방’이나 ‘먹방’ 등 시청자들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프로그램들이 번성했다. 백종원이란 일반 외식사업가가 쉬운 요리법으로 스타 탄생을 알렸고, SBS ‘백종원의 3대천왕’ tvN ‘수요미식회’ ‘집밥 백선생’ 코미디TV ‘맛있는 녀석들’ 등이 득세했다.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도 문제의식을 갖기 보다는 ‘헬조선’ 트렌드를 이용하기만 했다. ‘덕후’들을 전문가로 포장한 MBC ‘능력자들’, 실력으로만 경쟁에 임하지만 결국 일반인은 관객으로만 앉아있는 MBC ‘복면가왕’, 따뜻한 가족애를 모티프로 기획됐지만 평범한 가정과 차원이 다른 이벤트성 에피소드만 보여준 SBS ‘아빠를 부탁해’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TV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헬조선’을 그저 강 건너 불구경만 한 셈이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